고 김녹영 국회부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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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 김녹영국회부의장은 선명야당의 외길을 걸어온 4선의원.
해방후 20대초반의 나이에 이승만박사의 대한독립촉성회와 족청운동에 가담했으며, 민주당 결성후 전남도당 간부로서 60년 전남도의원에 당선돼 도의회 신민당(민주당구파) 원내총무를 맡았다.
61년 군정연장반대데모 주동자로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48세에 8대신민당후보로 광주을구에서 당선되어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카랑카랑한 특유의 어조로 신랄한 대정부공격연설을 잘해 선거구인 광주에서는 남너노소간에 「녹영이성님」으로 통할만큼 서민층에 인기가 높았다.,
72년 신민당이 유진산계와 김홍일계의 당권경쟁으로 깨지자 양일동씨를 도와 민주통일당 창당에 참여했고, 양씨 서거후 총재대행을 맡기도 했다.
5공화국 들어 정치피규제기간에는 민추협활동을 했고 2·12총선에서는 광주시민을 「울렸다, 웃겼다」하는 선거연설로 힘 안들이고 당선됐다.
신민당에서는 창당공로와 김대중씨와의 돈독한 관계가 평가되어 부총재겸 국회부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정치가 있는 국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부의장 당선소감을 피력한지 며칠 만에 도일해 부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며, 유족으로는 부인 조영창여사와 l남1녀가 있다. <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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