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선호의 "절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찍부터 우리는 남의 나라를 우러러 보고, 남의 나라 사람을 잘 따르고, 남의 나라 것이면 무조건 좋아한다. 필경 운명적으로 반도국가이므로 알게 모르게 대륙의 영향을 받아 외제선호의식이 우리 국민성의 일부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쓰레기 같은 외제선호의식이 가히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여러 사람 앞에서 헛기침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대개 그들의 자식들을, 머리야 좋든 말든 일단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놓는다. 웬만큼 재산이 있는 사람은 신병을 외국에 가 치료하거나, 외국까지 들락거리며 통원치료를 받거나, 외국인 주치의를 불러들이기까지 한다.
유명인사의 장례부고 광고에는 그의 자손들 중의 한두 사람이「재미」「재독」「재불」심지어「재일」하고 있다고 꼭 밝힌다. 그뿐인가. 우리 돈을 스위스 은행에 맡기는 사람이 없지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우리나라도 이제 웬만큼 국제적으로 얼굴이 넓어지고, 키도 커져 남의 것을 무조건 배척하고 경원시하면 좀스러워 보이고, 세계의 여론이 우리를 지구촌의 한 미아 쫌으로 취급할 터이므로 우리 것만을 지나치게 가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제 자식이 예뻐 보이지 않는 부모는 없을 테지만 우리의 교육제도를 송두리째 불신하는 사람이 애국을 외치는 꼬락서니만큼 난센스도 달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의술을 위시한 최첨단 과학기술은 하루빨리 배워 실용화해야 할 테지만, 우리의 의료기술수준을 무조건 부정하는 사람이 어찌 우리나라 사람이겠는가.
또 온갖 술수와 한탕주의로 번 우리 돈을 달러로 환금하여 외국으로 가져갈 바에야 아예 국적까지 갈았으면 반도에 남아 사는 서민들이 역정이라도 덜 내겠는데, 그들은 죽어도 그런 과단성은 없는 눈치이고, 국적을 바꾼 사람 치고 애국자 아닌 양반이 없거나 호시탐탐 한반도에서 또 돈을 벌거나 쓰려고 기를 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오늘의 조악한 우리 교육제도 아래서는 외국유학을 보내지 않을 수 없고 부실기업에 특용이나 해주기 위해 돈을 마구 찍고 그 빚을 아무런 양해도 없이 국민에게 떠넘기는 풍토아래서 스위스은행밖에 더 믿을게 없다는 불신풍조다. 자유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초창기에 외화 국외 도피자에게는 공개처형도 불사했다는 사실은「신뢰를 주고받는 정부와 서민」의 관계에 좋은 귀감임에 틀림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