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해봤습니다] 글로벌 ETF ‘직구’…시차 때문에 낭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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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최근 글로벌 ETF(상장지수펀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자가 직접 투자해 보니 장단점이 뚜렷했다. 일단 투자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시장을 들여다보니 국내 증시는 저금리에다 ‘박스피’에 갇혀 해외투자가 유망하다는 증권사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초보 입장에서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침 지난 2월 말 출시된 비과세 해외펀드 두 곳에 일단 돈을 넣었다.

모험 삼아 ‘호주달러 인버스’ 투자
달러 급등 알고도 매도 시간 놓쳐
국내 상장 해외ETF 선택 폭 좁아
운용사들 더 적극적으로 상품 내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펀드보다 투자대상이 훨씬 다양하고 수수료도 적은 해외 ETF에 눈길이 갔다. 미국 자산운용사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ETF는 이미 뮤추얼펀드를 넘어 가장 인기있는 투자 수단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용은 인덱스펀드 같은 것이 펀드와 달리 실시간 거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통상 업계에선 국내에 상장돼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해외 ETF’, 해외에 상장된 ETF를 직접 구매하는 것을 ‘글로벌 ETF’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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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다운받은 증권사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로 해외 ETF 상품을 검색해 보니 삼성자산운용(KODEX)이 15개(원자재 선물 투자 포함), 미래에셋자산운용(TIGER)이 10개에 불과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 한 곳이 내놓은 ETF 상품만 300개가 넘고, 미국증시에 상장돼 온갖 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2000개에 달한다는데 국내에 상장된 해외 ETF가 왜 이렇게 적은지 의아했다.

일단 세금 문제가 컸다. 국내에 상장된 해외 ETF는 매매차익의 15.4%를 원천징수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반면 해외 증시에 상장된 ETF를 ‘직구’하는 글로벌 ETF는 22%의 양도소득세만 내는데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종합과세 최고 세율 41.8% 대신 그 절반 가량인 22%만 내면 되니 특히 자산가의 경우 큰 이득이다. 해외 ETF는 투자자 입장에서 썩 구미가 당기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겨우 100만원 단위로 투자하면서 세금 문제를 크게 걱정할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투자대상이 훨씬 다양한 글로벌 ETF 쪽이 더 좋아보였다. MTS에서 해외상품거래 신청을 하고 다양한 상품정보를 찬찬히 읽어봤다. 달러로 환전도 해야했다. 일단 국내 증권사가 추천한 미국 우선주 ETF(PFF)에 100만원(846.95달러)을 넣었다. 미국의 우선주는 기본적으로 주식이지만 분기별로 채권의 표면이자처럼 고정적인 배당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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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좀더 모험적인 상품에 투자해 보기로 했다. 외신을 읽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호주달러 인버스 레버리지 ETF(CROC)를 찾아냈다. CROC은 미 달러화로 환산한 호주달러 가치가 떨어질 때마다 그 두 배를 수익으로 주는 ETF 상품이다. 최근 호주중앙은행이 낮은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내년까지 세 번 기준금리를 인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호주달러 가치가 계속 떨어졌다. 현재 1호주달러가 73센트인데 연내 65센트까지 떨어진다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7일 호주중앙은행 이사회의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통화가치의 급격한 하락 등을 우려해 금리인하를 연기하려고 했다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호주달러가 한달여 만에 최고치로 올라 큰 손해를 보게 됐다. 당장 매도해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즉시 매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미국 증시 거래시간에만 매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은행금리가 연 1%대에 그치는 현실에선 해외에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으려는 수요가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해외 투자 상품은 제한적이고 직접 투자를 하기도 불편하다. 이 때문에 국내 운용사가 더 적극적으로 해외 ETF 상품을 내놔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자산운용 문경석 패시브전략본부장은 “저금리 시대 해외투자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업계가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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