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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e메일 쓴 기억없다" 오리발 그만…'디지털증거법' 법사위 통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대선 개입 댓글 혐의(선거법 위반)에 대해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았다. 심리전단 직원 김모씨가 핵심 증거물인 댓글활동 계정이 담긴 텍스트 파일에 대해 “내가 작성한 기억이 없다”고 부인해,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새시대교육운동준비위’ 전교조 교사들도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2500여 건의 주고 받은 e메일들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해 이적단체구성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자필이나 서명·날인이 있어 부인하기 힘든 종이 증거물과 달리 e메일, 문서파일 같은 디지털 증거에 대한 조항은 없어 작성자가 재판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쓸 수 없어 생긴 일이다.

디지털 증거에 대해 작성자가 부인하더라도 과학 수사와 감정 등을 통해 작성 사실을 입증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디지털증거법)이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컴퓨터용 디스크, 기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파일을 증거로 추가하고, 작성자가 부인해도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등에서 작성 사실을 입증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법사위는 또 피고인이 아닌 사람이 작성한 증거에 대해 변호인이 재판에서 작성자를 불러 신문할 수 있도록 ‘반대신문권’도 도입했다.

이날 통과된 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에서 ‘법 시행후 최초 공소제기되는 사건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해 원세훈 전 원장 파기환송심에는 소급 적용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법사위 관계자는 “이번에 통과된 ‘디지털 증거법’은 가습제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옥시 측과 로펌 사이에 주고 받은 e메일에 대해 처음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법사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회의에서 “디지털 증거의 경우 원본을 조작·편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편집 가능성을 철저하게 예방하는 장치가 마련됐는 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란 소수 의견을 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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