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호기심 영화천국] '우정출연' 톡 까보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Q: 우정출연은 카메오 출연과 어떻게 다른가. 우정출연의 기준이 있다면.

A: 우정출연의 기준? 없다…기보다는 애매모호하다는 게 정확하다. 조연이라 하기엔 출연 분량이 매우 적고 단역이라 부르기엔 그 배우의 지명도 등에 비추어 괜스레 미안할 때 우정출연이라 일컫는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카메오와 어떻게 다르냐. 카메오는 우정출연보다도 비중이 현저히 작다. 황금박쥐처럼 번개같이 나왔다 사라지지만 황금박쥐의 망토처럼 뇌리에 깊숙이 새겨지는 게 특징이다.

돈 문제도 걸려 있다. 카메오는 대개 기름값 수준의 거마비를 받는다(스타들의 기름값은 일반인의 그것보다 당연히 비싸긴 하다). 우정출연은 이보다는 액수가 뛴다. 그래도 '정상가'보다 훨씬 할인된다.

'우정'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대개 제작자나 감독, 또는 주연 배우와의 친분 관계에서 출연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촬영 중인 사극 코미디 '황산벌'에 신현준과 김승우가 백제 병사로 잠깐 나온 건 계백 장군 역의 박중훈 때문이다.

평소 박중훈과 형 동생할 정도로 절친한 이들은 술자리에서 "그 갑옷 한번 입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꼼짝없이 엮여 밤샘 촬영까지 해야 했단다.

그런데 꽃게탕에 꽃 없고 꼬리곰탕에 곰 안 들어가듯 '우정'없이도 '우정출연'을 했다고 주장하는 배우들도 간혹 있다.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첫째, '영화를 찍고 보니 내가 나온 부분이 많이 잘려서 짜증나더라'형. 멀쩡한 주연급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주연이라 하기에 겸연쩍을 만큼 잘린 경우다.

'클래식'시사회 직후 영화사에 우정출연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던 조인성이 그랬다. 감독과의 '코드'가 맞지 않아 잘린 셈인데 누구를 탓하리요. 결국 옥신각신 끝에 손예진.조승우에 이어 셋째 주연으로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둘째, '다른 주연들과 나란히 서기엔 다소 자존심이 상해'형. 최근 개봉한 한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한 A씨. 우정출연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등장하는 분량이 너무 많아 어리둥절하다. 주연이 네명인데 첫째로 이름이 못 들어가느니 우정출연으로 해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최근 흥행에 참패한 한 멜로 영화에 등장한 B씨도 배우.감독과 별 우정은 없지만 우정출연했다. 원하는 비중, 원하는 만큼의 출연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란다.

결국 우정이란 말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사랑만큼이나 남발되는 충무로의 우정이 썩 보기 좋은 건 아니다. 관객은 영락없이 속는 거니까.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