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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환경 탓 태아 질병, 엄마 산재는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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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게 2010년은 악몽의 해였다. 2009년에 임신한 15명의 간호사 중 다섯이 유산했다. 신생아 중 넷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여섯 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이 간호사들의 유산율(33%)은 당시 전국 평균의 약 1.6배였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 출산율(27%)도 일반인 평균(약 3%)의 9배였다.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 패소 판결
1심 “요양급여 지급” 2심서 뒤집혀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경영난에 의한 임금체불에 시달리던 이 병원 간호사들은 이직이 잦았다. 그 여파로 일반 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입원환자 수가 평균 40~60명에 달했다.

알약을 섭취하기 어려운 고령의 장기 입원환자가 많은 탓에 간호사들은 약국에서 알약으로 보내 온 약 수백 정을 막자 등으로 분쇄하는 작업을 하루에 두세 차례 해야 했다. 이 약들 중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으로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면 임산부의 복용이 금지되는 D등급 의약품이 37종,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의 복용이 완전히 금지되는 X등급 의약품 17종이 포함돼 있었다.

서울대와 산업안전연구원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 간호사들의 유산과 선천성 질환아 출산은 이 같은 업무환경 때문임이 입증됐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유산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면서도 선천성 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들의 요양급여 신청은 거부했다.

이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한 네 명이 소송을 냈다. 법원은 아이의 질병을 엄마가 입은 업무상 재해라고 볼 수 있는지를 두고 고민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엄마에게 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이 판사는 “태아와 엄마의 몸은 단일체여서 태아의 법적 권리와 의무는 모두 아이 엄마에게 속한다”며 “임신 중 업무로 인해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면 엄마가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11부는 항소심에서 “업무상의 이유로 발생한 아이의 선천성 질환은 아이의 질병일 뿐 어머니의 질병이 아니다. 아이 엄마에겐 요양급여 수급권이 없다”고 11일 판결했다. 이 사건의 결론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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