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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튀는 "반도체전"|"일 무차별 덤핑·시장잠식"…미업계 자구책"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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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과 일본간의 반도체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반도체산업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미 업계가 일본 메이커들이 불황타개의 수단으로 적극적인 시설 투자와 미국 시장공략을 더욱 적극화하려 들자 이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반도체업체들의 모임인 SIA (미반도체공업회)는 지난 14일 일본 반도체메이커의 불공정한 행위가 미업체에 피해를 미치고 있다고 USTR(미 통상대표부)에 제소했다.
일본이 미국의 반도체 제품에 대해서는 시장을 닫아걸면서도 값싼 일본제품을 미국에 대량 수출하는것은 불공정한 행위라는것.
이를 개선키 위해서 내년까지 미 제품의 일본시장 점유율만큼만 일본제품을 미국에 들여올수 있게 하고▲양국간에 덤핑감시조치를 도입키 위한 정부간 교섭을 벌이자 고 요청했다.
만약 일본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일본메이커를 독점금지법위반및 GATT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위반·덤핑 등으로 조사에 들어가야한다는게 미업계의 주장이다.
이같은 미일간의 반도체 전쟁이 벌어지게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세계적인 불황에 있다.
반도체 산업이 호경기를 누리던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별 탈이 없던것이 작년가을부터 시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서로가 줄어든 몫을 늘리기에 필사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메이커들은 대대적인 시설증설과 가격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시장의 공략을 강화했고 그 여파로 미국의 반도체업계에는 조업단축과 종업원의 일시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결국 미업계는 일본 제품의 대미수출공세가 기술개발에 대한 일본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불공정한 행위라고 제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작년 여름까지도 생산이 주문을 따르지 못하는 대호황을 누렸었다.
수급 밸런스가 무너진것은 작년 가을부터였다.
미국시장을 중심으로 퍼스널 컴퓨터등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자 계속 호황을 기대하고 미리 반도체를 잔뜩 쌓아논 컴퓨터 메이커등 대형수요처들은 엄청난 재고를 안게 됐다.
이에 따라 작년9월 이후 미업계의 수주량은 계속 줄어들었다.
시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가격 붕괴현상이 일어났다.
64KD램은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개당 2∼3달러선을 유지했으나 그 후 급락을 거듭, 현재는 1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백56KD램도 마찬가지. 작년초 개당 6천엔 (약24억달러)대에서 요즘은 거의 8백엔으로 떨어졌다.
반도체는 신제품이 개발되면 기존 제품은 가격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업계는 이같은 추세에 따라 기존제품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새로운 투자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사이클이 너무 짧았고 가격붕괴의 폭이 완전히 예상을 깨뜨릴 정도로 컸다는데 문제가 있다.
애당초 64KD램으로 한두 해 더 재미를 보고 2백56KD램으로 넘어가려던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들은 계획을 앞당겨 올부터 대대적인 2백56KD램 증설작업에 들어갔다.
일본의 5대 반도체메이커들은 올연말까지 2백56KD램 생산시설을 각각 현재의 2∼3배 수준으로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모두 준공되면 이들 5개사의 생산도 월산 4천만개에 달하게 된다.
이양은 사실상 2백56KD램의 전세계 수요와 맞먹는 것이다.
결국 전세계 시장의 30%정도를 차지하는 일본국내에 대한 공급을 제외하고 나머지. 7O%는 외국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주목표가 미국이 될것은 자명한 사실.
이 같은 일본의 대대적인 설비투자와 수출공세가 이뤄지면 미국의 반도체업계는 설 땅이 없게 된다. 미국 측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올해 약2백48억3천6백만달러로 작년보다 오히려 4·3%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터라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일본의 반도체업계 사이에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2백56KD램전쟁에서 살아남을 기업은 전세계에 5개정도로 내다볼 만큼 예측불허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세계최대의 반도체메이커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지난 1월 2천명의 종업원을 일시해고하는등 인텔·모스테크·내셔널 세미콘 닥터·페어차일드·시그네틱스사등 대형메이커들이 6월초까지 모두 1만명 이상을 해고시켰다.
미국의 반도체업계의 매상고는 지난해 1백20억달러에서 올해는90억달러로 25%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그나마도 일본메이커들이 잠식한다는 것.
지난해 일본은 반도체 무역에서 2천86억엔 (약8억3천5백만 달러)의 혹자를 올렸다.
그 결과 미시장에서 일본반도체의 시장점유율은 80년의 7%에서 지난해 17·4%로 급속히 높아졌다.
미업계로서는 이 추세를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VLSI 메모리 분야에서 살아남을 미국기업은 TI등 1∼2개에 불과할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미업계에서는 일본제품이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것은 일본정부가 막대한 돈을 들여 기술개발을 하고 개발기술을 민간기업에 제공하는등 정부지원에 힘입은 것이라고 보고있다.
또 미반도체 메이커들의 일본시장 점유율은 84년에 11·4%로 73년과 거의 같은 수준이며 또 유럽시장 점유율 55%, 일·미·유럽을 제외한 세계시장 점유율 46%(일본은 28%)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수준으로 이는 일본의 수입장벽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의 반도체업계는 일본전기·부사통·동지·일립·송하전기·삼능전기등 6개업체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개입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주장.
게다가 세계시장 상황은 고려치도 않고 일제히 대대적 시설증설에 나서는가 하면 일립의 경우「10%를」을 정해 무조건 경쟁기업체보다 10%싼값에 물건을 파는등 의 덤핑행위를 노골화하고 있는것도 공존공영 원리를 무시한 무책임한 처사라는 얘기다.
결국 미 업계는 USTR에 일본제반도체에 대해 미통상법 3백1조에 의거 조사요청을 하고 나섰고 USTR도 이를 받아들여 곧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미통상법 3백1조는 무역상대국의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 수입제한등의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인데 지난 84년 통상법이 수정되면서 이번에 문제가 되고있는 반도체등 하이테크 산업과 서비스 산업 등에도 적용이 가능해졌다.
USTR는 상무성·국방성등과도 수입제한문제를 본격적으로 협의하겠다는 방침인데 이는 미국의 반도체업계가 피해를 보게되면 결국 무기의 제조및 기술개발등에 지장을 초래해 결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인식을 미국정부가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순한 미국산업의 피해를 보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미행정부가 조사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내릴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 일본의 자율규제라는 폭으로 몰고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IBM이나 애플사 같은 컴퓨터 메이커들은 수요의 상당량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수입제한으로 값이 비싸질 것을 우려,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IBM은 일본전기 등으로부터 VLSl 메모리를 대량구입하고 있고 애플이 지난해 10월 동경에 부품 조달사무소를 열었으며 휴레트페커드등 여타 업체도 상당량의 일제 반도체를 쓰고 있다.
결국 미정부로서도 미일반도체전쟁 문제를 수요자보호와 국가안보의 확보라는 양면에서 검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수입제한같은 강경한조치로 치닫지는 않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미정부는 조사과정에서 일본이 스스로 수출을 자율규제토록 「압력」을 넣어 부전승을 거두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박태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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