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미국의 원폭 사과로 해석”…백악관 “그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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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로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이 일본인들에게 미국의 원폭 투하 행위에 대한 사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한·중 ‘일본에 면죄부’ 불만 의식
‘이번 방문 아시아 안정에 기여해야’
오바마, 일본 향해 메시지 전할 듯
히로시마 연설서 ‘핵 없는 세상’ 완결
핵 군축을 3대 외교업적 중 하나로
일본 언론 “아베, 11월 진주만 답방”

USA투데이는 10일(현지시간) “일본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 명쾌하게 사과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지만 히로시마 방문 자체를 사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도 “일본에서는 그의 방문을 미 대통령이 원폭으로 인한 공포와 파괴를 인정하는 중요한 제스처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제프리 호눙 미 사사카와평화재단 연구원도 지난달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연설하면 그의 발언이 잘못 해석되고 정치적 논쟁을 일으키면서 과도하게 분석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백악관은 이를 일축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과거 원폭 투하에 대한 사죄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미 정부 관계자도 “연설이 되건 성명이 되건 그 안에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일본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한국·중국의 반발을 감안, 이번 방문이 ‘아시아 지역의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일본을 향한 메시지가 들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도 ‘사죄’라는 단어는 피하는 모양새다. TV아사히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길게 연설해 원폭 투하의 시시비비에 대해 언급하게 될 경우 사죄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짧게 말할 것이라는 게 백악관 측의 설명”이라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피폭자들과의 만남도 미국 내 여론을 살피며 결정한다는 것이다.

미·일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핵무기 근절의 비전을 밝히는 자리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워싱턴과 도쿄의 외교 소식통들은 10일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의 구상을 밝힌 2009년 4월의 ‘프라하 연설’을 마무리하는 성격의 ‘제 2의 프라하 연설’ 혹은 성명을 내기로 하고 구체적인 문안 작성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체코 프라하에서 “미국은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며 ▶핵무기 군축 ▶핵 비확산 ▶핵 안보 강화를 제창했다. 이를 계기로 핵안보정상회의가 발족됐고 오바마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임기가 8개월 남은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이란 핵 협상 타결’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에 이어 히로시마 방문을 통한 ‘핵 군축 확산’을 자신의 ‘3대 외교 레거시(legacy·업적)’로 자리매김하려는 집념이 강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밝힐 구상에는 미국의 핵무기를 추가 감축하고 미사일 등 무기 구입을 대폭 줄이는 내용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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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한·미, 오바마 히로시마 방문 사전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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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는 11월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하는 방안이 일본 정부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인 진주만 방문이 성사되면 미·일 간 과거사 화해의 일대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장래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도쿄·워싱턴=오영환·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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