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무원 “우리도 집단사고 오류 빠져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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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쩌면 우리 모두 ‘그룹 싱킹(Group thinking)’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닐까요. 조선 3사의 눈부신 성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정책 당국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않다고 봅니다.”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미래 신성장동력’이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다가 부실 주범으로 전락한 해양플랜트 사례를 보면 집단사고의 오류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을 떠안아 재무구조가 악화된 국책은행뿐만 아니라 조선 3사와 정부, 전문가 집단, 언론도 자유롭지 않다.

정부도 조선업 부실 책임
조선업 호황에 자만심 커져
수출입은행 동원해 거액보증
“다른 의견 낼 싱크탱크 필요”

2000년대 중반 조선 3사는 밀려드는 선박 수주에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며 글로벌 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선박 수주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조선 3사는 매출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조선 3사가 시공능력은 좋았지만 설계 등 엔지니어링 기술과 기계설비 조달 능력은 부족했다”며 “성공신화가 계속된다는 자만심이 컸다”고 했다. 2011~2013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고유가 시대가 닥치면서 심해 유전개발이 늘어났고 덩달아 해양플랜트 수주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언론은 신시장 개척에 나선 조선 3사의 성공스토리와 전문가의 호평을 잇따라 보도했다.

정부도 적극 나섰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5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해양플랜트, 제2의 조선산업으로 키운다! 2020년 해양플랜트 수주액 800억 달러 목표’라는 희망찬 제목이 붙어 있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3년 11월 해양플랜트가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며 9000억원을 투입해 1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수출 드라이브를 펴고 있는데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선수금 환급보증(RG)을 안 해줄 도리가 있었겠느냐”고 했다. 수은은 대우조선 한 곳에만 7조원이 넘는 RG를 발급했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면서 선주의 계약 취소와 인도지연 요청이 이어졌다. 지난해 조선 3사는 8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 가운데 7조원이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탓에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부족하다”며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립적인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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