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 아동 보살피는 말기암 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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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박희병씨가 월드비전 대전충남지부에서 결식 아동들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싸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1시 대전시 중구 선화동 월드비전 대전충남지부 안에 있는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 조리실. 말기 위암환자인 박희병(50.대전시 중구 부사동)씨가 국제구호 및 봉사기구인 월드비전 소속 봉사대원들과 함께 설거지를 하고 있다. "몸도 불편하신데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말을 건네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몸 상태도 나아지고 이웃의 소중함도 깨닫게 됐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씨는 지난해 5월부터 11개월째 매주 두세 차례 이곳에서 결식 아동에게 배달하는 도시락 포장 및 설거지를 하고 있다. 회수해온 도시락 200여 개를 깨끗이 닦고, 배달용 도시락에 반찬과 밥을 퍼담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이다. 월드비전은 대전지역 250여 명의 결식 아동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불우 이웃들의 집을 고쳐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9세 때부터 20여 년간 건축공사장에서 목공일을 해온 그는 2003년 5월 퇴근길에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위암 말기로 3개월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박씨의 아내는 뇌종양으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두 딸 가운데 큰딸(14)은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식구 중에서는 작은딸(12)만 별 탈없이 자라고 있다.

그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암 진단도 날벼락이었지만 저까지 세상을 떠나면 고아가 되는 딸들 걱정이 앞서더군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항암 치료 때문에 자주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집에 남아있는 두 딸에게 밥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박씨의 큰딸이 다니는 대전 혜광학교(장애인학교) 학부모들이 지난해 5월 박씨의 딱한 사정을 월드비전에 알렸다. 월드비전은 그때부터 박씨와 두 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두 딸이 도시락을 받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봉사대열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월드비전을 찾아가 "내게도 뭔가 할 일을 달라"고 요청했다. 월드비전은 박씨의 뜻을 받아들였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지 나와서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즐겁고 삶의 의욕이 강해진 덕분인지 암 세포가 줄어들고 몸의 통증도 상당히 완화됐다"면서 "앞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에서도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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