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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사랑에 나이 있나요…뭐든 할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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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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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 포장에 반대하는 캠페인 ‘고 네이키드’에서 행진 중인 박현연씨(가운데)와 참가자들. [사진 러쉬]

“과대 포장 노(No)! 알맹이가 섹시하다!”

‘고 네이키드’ 행진한 56세 박현연씨
아들 아토피 보며 친환경에 관심
명동 한복판서 과대포장 반대 운동

지난달 22일 명동 한복판에 민소매 상의와 짧은 핫팬츠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남녀 30여 명이 등장했다. 정면에서 보면 언뜻 앞치마만 두른 것 같은 모습을 한 이들은 ‘왜 우리가 벗었을까요’ ‘자, 벗을 준비 되셨나요?’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행인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따라갔다. 환호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소 야한 차림으로 길거리에 나선 이들은 바로 영국 수제 화장품 회사 러쉬(LUSH)가 과대 포장에 반대해 기획한 퍼레이드 ‘고 네이키드(Go Naked)’의 참가자들이다. 고 네이키드는 불필요한 포장재 때문에 생기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의 행사로, 러쉬가 진출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9년 서울 대학로에서 처음 진행된 뒤 올해가 두 번째다.

이날 참가자 대부분이 20~30대인 가운데서 열정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한 중년 여성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바로 올해 56세인 박현연씨다. 그가 손을 힘차게 뻗으며 구호를 외칠 때마다 주변에선 “아줌마 화이팅!” 등 격려의 외침이 들려왔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씨가 이같은 대담한 행사에 참여하게 된 건 남다른 환경 사랑 때문이다. 1남 2녀를 둔 박씨는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같은 여러 피부 질환을 앓던 아들이 천연재료로 만든 비누 등을 쓰고 낫는 것을 보고는 친환경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는 직접 친환경 화장품·비누 등을 만들기 시작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선물했다. “처음엔 단순히 화학 제품이나 플라스틱 물건 대신 친환경 물품을 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사람 몸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으니까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쓰레기 문제나 재활용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이어 박씨는 쓰지 않는 물건을 재활용해 물건을 만드는 ‘리폼’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부하는 일에 빠졌다. 거주지인 인천시 구월동에선 그의 재활용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잘 입지 않는 민소매 셔츠를 면 가방으로 만들거나, 오래된 한복을 잘라 비단 손수건으로 만드는 식이다. 8년 전부터는 헌옷을 모아 가방·이불 등을 만들어 사회복지관 등에 기부하고 있다. 현재까지 후원한 물품만 500여 점이 넘는다.

올해 2월 손자를 얻어 할머니가 된 박씨는 앞으로도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이면 무엇이든 나서겠다는 마음이다.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엔 나이가 중요하지 않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어요.”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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