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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5년 만의 사과…피해자들 거센 항의에 5분 만에 중단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댓 이즈 투 레이트(너무 늦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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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 사프달 옥시 대표(왼쪽)가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단상에 올라와 항의하는 피해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 조문규 기자]

5년 만에 열린 기자회견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의 거센 항의로 5분도 채 안 돼 끝나 버렸다. 2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2011년 사건이 불거진 후 처음 연 공식 기자회견에서다. 이날 아타 사프달 옥시 대표는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로 폐 손상을 입은 모든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드린다. 옥시 영국 본사와 한국 법인은 이번 가습기 사태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고개 숙이며 준비된 성명 읽다 파행
보상 관련 구체적 절차는 설명 안해
피해자 측 “100번 전화 묵살” 분노
영국 본사 경영진 살인 혐의 고발
검찰, 본사가 조치 안 한 배경 조사
애경·이마트 수사도 배제 안 해

사프달 사장은 보상 계획으로 ▶7월까지 독립적인 전문가 패널(위원회)을 구성하고 ▶폐손상 1~2등급(한국 정부 판정 기준) 피해자에게 보상 계획을 고지하며 ▶기존에 출연한 100억원으로 그 외 피해자(3등급 등)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인당 보상금액이나 피해 보상에 대한 구체적 절차는 설명하지 않았다.

옥시 측은 사프달 대표가 무대 우측 편에서 등장해 준비된 원고를 읽고, 고개를 세 차례 숙이며 사과를 하는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사과 성명서도 사프달 사장이 5분간 원고를 읽고 순차 통역이 끝난 뒤 배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전 11시5분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유가족 10여 명이 회견장에 등장하면서 ‘각본’대로 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5년이 지나서야 옥시가 입장 표명을 하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가족들은 “옥시에 100번 이상 전화했지만 ‘연락드리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끊었다”고 외치며 항의했다.

사프달 대표는 “아이 어폴로자이즈(I apologize)” “소리(sorry)” 등의 말을 반복했다. 밝은 표정으로 행사를 진행하던 통역사가 가족들의 분노에 당황해 한국어로 말할 것을 영어로 통역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국 본사가 이사회를 열어 결정했다고 한다. 국내에서 옥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검찰 수사가 영국 본사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데 위기감을 느낀 조치란 분석이 나온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영국 레킷벤키저의 최고경영자(CEO) 라케쉬 카푸어 등 이사진 8명을 살인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영국 본사가 2011년까지 제품 회수·판매 중단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배경을 살펴보고 있다.

또 ▶소비자 부작용 상담 글 삭제 ▶서울대 등 외부 연구기관 실험 의뢰 ▶법인 청산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옥시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영국 본사가 관여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한 시점(2001년 3월)을 고려하면 제품 개발·제조 과정에서 영국 본사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가 제품 제조와 관련된 최고결정권자였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팀은 신씨를 한 차례 더 소환조사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검찰은 2일 옥시의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 한빛화학 대표 정모씨 등 3명을 불러 조사한 데 이어 3일엔 조모 옥시연구소장 등 2명을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 전 대표와 연구원들을 대질신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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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검찰이 애경·이마트 등을 수사할지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환경부가 이 회사들이 제품을 만드는 데 쓴 물질(CMIT/MIT)의 독성학적 분석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다. 검찰은 지금까지 질병관리본부가 유해성을 입증한 물질인 PHMG와 PGH를 제품 원료로 쓴 기업만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검찰 관계자는 “(환경부 등이) 객관적인 조사 근거를 발표한다면 다른 제품의 수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글=장혁진·이현택 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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