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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별들의 전쟁’ 기술적 우위, 소련 체제 몰락 재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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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4면

2001년 5월 1일 미국 국방대학교에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미사일 방어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미군이 2013년 9월 하와이 인근 섬에서 실시한 사드의 요격용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아래). [중앙포토]

최근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연속 실시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과 중거리탄도미사일 ‘무수단’을 잇따라 시험 발사했고 5차 핵 실험 준비를 이미 완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미사일을 어떻게 방어하느냐는 것은 이미 대한민국 안보의 주요 현안이 됐다.


‘미사일방어(Missile Defense·MD)’는 지금으로부터 꼭 15년전에도 등장했다. 2001년 5월 1일,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미사일방어 도입을 선언했다. 그 해 12월 13일 미국은 탄도탄요격미사일(Anti-Ballistic Missile?ABM)을 제한하던 ABM조약의 서명국인 러시아에 이를 통고했고 6개월 후인 2002년 6월 14일 ABM조약에서 탈퇴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3년에 출범한 전략방어계획기구(Strategic Defense Initiative Organization·SDIO)는 1993년 탄도미사일방어기구(Ballistic Missile Defense Organization·BMDO)를 거쳐 2002년 미사일방어청(Missile Defense Agency·MDA)으로 개편됐다.


미사일방어는 적의 미사일을 발견·추적·차단·파괴하는 기술 및 무기 체계를 의미한다. 방어 범위와 요격 고도에 따라 세분하기도 한다. 미국 국가미사일방어(National Missile Defense·NMD)는 미국 본토 전체를, 또 전역미사일방어(Theater Missile Defense·TMD)는 특정 전역(戰域)을 각각 방어 범위로 둔다.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미사일방어는 요격 고도에 따라 구분하고 있는데, 적의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에 요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적의 미사일이 종착 단계에 진입하면 높은 고도에서 요격하는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THAAD), 적의 미사일을 낮은 고도에서 요격하는 패트리엇(Patriot Advanced Capability?PAC) 등이 거론되고 있다.

2004년 12월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패트리엇 한국 배치 환영식(왼쪽). 같은 해 10월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 앞에서 열린 패트리엇 배치 반대 시위. [중앙포토]

부시, 기술적 문제 해결 후 MD 도입 선언미사일방어망을 보유하느냐를 놓고 한국 사회는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이제 미사일방어는 전문가의 연구 주제를 넘어 주요 사회 현안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미사일방어의 기술적 수준과 전략적 효과에 관한 이해는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미사일방어가 미사일공격의 반대 행위라고만 단순하게 받아들이기에는 공격과 방어의 전략적 관계가 너무 복합적이다. 공격력과 방어력 간의 전략적 관계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방어력만으로 상대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A국이 공격력 10개를 갖고 있고, B국이 방어력 10개를 갖고 있으며, 방어력 1개가 상대 공격력 1개를 99% 막는다고 가정해 보자. A국이 B국과 분쟁을 겪으면 B국을 도발하기가 쉽다. 설사 공격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공격받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즉 방어력만 갖고 있어서는 상대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안전은 상대의 공격을 잘 막는 ‘방어’보다 상대가 공격을 아예 시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지’에서 더 보장된다. 공격력의 안보 기여도가 방어력보다 더 높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지나친 방어력은 스스로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하기도 한다. 흔히, 공격 무기는 악(惡), 방어 무기는 선(善)이라는 이분론적 인식을 갖는다. 그런데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방어력이 우세한 측이 더 높을 수 있다. 예컨대 A국이 공격력 10개를 갖고 있고, B국은 공격력 1개와 방어력 11개를 갖고 있으며, 방어력 1개가 상대 공격력 1개를 99% 막는다고 가정해 보자. A국은 B국을 공격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또 B국의 역공격을 방어할 수 없기 때문에 도발을 주저한다. 반면에 B국은 자국의 피해 없이도 A국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도발을 덜 자제한다. 방어력에 치중해 평화적 이미지를 갖춘 B국이, 공격력에 집중한 호전적 모습의 A국보다 도발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방어력은 상대의 공격력을 상쇄한다. 방어력이 지나치면 상대의 공격력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이런 상황에선 교전에 의한 전멸이 두려워 도발을 자제하는,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MAD)’의 억지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냉전시절인 1972년 5월 26일 미국과 소련이 방어용 무기인 탄도탄요격미사일을 제한하기로 하는 ABM조약에 서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셋째, 방어력은 상대의 공격력 증강을 유도해 상대 체제의 불안정을 증대시킬 수 있다. 1983년 3월 23일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핵 공격으로부터 미국 국민을 보호할 방패에 대해 언급했다. 즉 전략방위계획(Strategic Defense Initiative·SDI), 일명 ‘별들의 전쟁’이다. 소련 역시 탄도탄요격미사일 개발 능력이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미국에 열세였다. 그래서 미국의 방어 능력 향상에 대비해 훨씬 더 많은 공격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소련은 과도한 군비 부담으로 경제가 악화돼 결국 체제 종말을 맞았다.


넷째, 공격과 방어의 상대적 우선순위는 기술 발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한다. 방어 중심의 정책은 공격 기술이 발전하면 외면되고, 방어 기술이 발전하면 강화된다. 상대가 돌을 던질 때 다른 돌로 그 돌을 맞히는 것이 어렵듯이, 날아오는 상대 미사일을 요격하기란 쉽지 않다. 폭격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위한 지하 격납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갖춘 잠수함 등 공격을 위한 운반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방어력은 덜 중시됐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의 미사일방어 선언은 미사일방어의 기술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상대 미사일이 대기권에 다시 돌입하는, 이른바 ‘종착 단계’ 가운데에서도 저(低)고도가 아닌 고(高)고도에서 직접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사드의 경우 1992년부터 미국 육군과 록히드 마틴 간의 계약으로 본격 개발에 들어갔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1999년에 미사일 요격 실험이 처음 성공하면서 미사일방어 정책을 채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어력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종류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의 미사일방어체제 도입 선언 4개월 뒤 발생한 9·11 테러는 미사일 외에도 미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다섯째, 공격력이나 방어력의 공개는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미사일 모습이나 발사 장면 등을 노출시키는 것은 상대국에게 어떤 인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에서다. 동시에 국내 불안을 잠재우려는 국내정치적 목적도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무기의 성능을 감추는 게 유리할 때도 있고 반대로 보여주는 게 유리할 때도 있다. 때로는 과장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자신의 공격력이나 방어력을 그대로 공개하느냐 아니면 속이느냐는 것은 전략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다.


여섯째, 방어력 증강의 필요성은 상대의 공격력보다는 상대의 적대적 의도에 의해 제기된다. 미국과 소련이 방어용 탄도탄요격미사일을 제한하게 된 것도 적대적 의도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상대 공격에 취약하게 만드는 ABM조약의 기본 전제는 ‘쌍방 모두 공격을 받지 않는 한 공멸을 가져다 줄 선제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억지 체제는 어느 일방이 현상 유지 대신 새로운 요구를 위해 행동에 나설 경우엔 작동될 수 없다.


북한 호전적일수록 남한 방어력 증강 한반도는 핵무장화뿐 아니라 호전적 의도에서도 극심한 비대칭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 사회는 북한의 핵무장 의도에 의구심을 갖는다. 선제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억지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목적보다는 남한을 비롯한 여러 주변국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위협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때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활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북한 매체의 보도 내용만으로 판단하자면 북한의 의도는 억지의 차원을 뛰어넘는 매우 도발적인 위협 수위다. 북한이 현상 파괴를 원한다는 조짐은 남측으로 하여금 미사일방어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실전 배치까지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북한이 호전적 의도를 드러낼수록 남측의 방어력은 증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고체 연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으로 이어진 북한의 군사력 개발은 발견-추적-차단-파괴로 이어지는 미사일방어를 점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고체 연료는 액체 연료와 달리 발사 징후를 상대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수중이라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선제타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1년 부시의 미사일방어 선언은 한국 사회에 찬반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2004년 패트리엇 한반도 배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사드의 한국 배치 논란 역시 찬성과 반대의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미사일방어체제 배치와 관련된 찬반 논쟁은 전략적이고 논리적인 논의 대신에 남남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공격과 방어의 전략적 관계를 이해하고 공유한 맞춤식 미사일방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궁극적으론 방어보다 억지, 또 억지보다 예방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무기의 효용은 그것이 사용되지 않을 때 가장 크다. 핵 보유국끼리의 경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측은 승패를 떠나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에 가깝다. 미사일방어의 효과도 사용되지 않을 때가 사용될 때보다 훨씬 더 크다. 싸우지 않고 방어하는 것이 싸워 방어하는 것보다 더 상책(上策)이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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