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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2+4 약학사제도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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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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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이화여대 교수
화학나노과학과

기초과학은 첨단 과학기술의 출발점으로 미래 국가의 생존을 위해 최우선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우수한 과학인재의 양성은 과학선진국을 향한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세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기초과학의 위상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기초과학분야에서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재의 양성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거나 늘어나는 교육투자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젊은이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는 교육시스템 때문이다.

최근 기초과학분야의 인재양성을 황폐화시켜온 대표적 제도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제도가 있다. 4년제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 MEET라는 시험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제도로 2005년부터 5년 동안 시행되다가 거의 폐기됐다. 과거대로 고교를 마치고 의예과로 입학해 6년간 공부하는 제도로 환원된 것이다. 매년 수많은 인재가 기초과학분야 대학 4년 동안 MEET 학원가를 전전하며 의전 입학을 위해 시간과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입시전쟁에 몰렸었다. 반면 기초과학분야 대학들은 의전 입시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전락해 학부 교육의 정상운영이 어렵게 되었으며 대학원생을 확보할 수 없게 되어 기초과학분야는 황폐화됐다.

또 하나 아직도 살아남아 기초과학분야의 인재양성을 황폐화시키는 제도로 ‘2+4년 약학사제도’가 있다.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고교 졸업 후 관련 분야 대학에 입학, 2년을 다니다가 자퇴하고 약대 3학년으로 입학하는 제도다. 매년 전국의 기초과학분야 대학생 1만5000명 정도가 입학 후 정상적 대학생활을 포기한 채 2년 동안 사설학원을 전전하면서 정원이 1700명 정도인 전국 약대에 진학하기 위해 PEET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다. 대학의 기초과학학과들의 교과과정이 약대 편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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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모든 약대가 부작용을 지적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35개 약학대학 가운데 33개 학교가 6년 통년제를 요구하고 있다. 현 약학사 제도 시작 때부터 이러한 우려가 있어 왔으나 의전에 이어 무리하게 시행됐었다.

오늘날의 혼란과 낭비는 선진국의 약학사 제도를 무작정 도입해 실행한 결과다. 졸업생 수보다 훨씬 많은 학생이 입학하고 자유롭게 진로를 변경하거나 졸업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을 갖춘 선진국 대학과 달리 우리나라 대학은 입학정원이 교육부에 의해 엄격하게 정해지고, 편입 정원수도 관리돼 학생들이 도중에 약대로 입학하기 위해 자퇴해 버리는 경우 기초과학분야 대학은 텅 비어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기초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들어온 학생들조차도 쉽게 60학점만 채워 나가려는 약대진학 준비생들 탓에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돼 피해를 보고 있다. 기초과학의 심화과목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약대 입장에서도 사설학원에서 예상문제만 주입식으로 공부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게 되니 기초가 턱없이 부족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이 심각하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견인하던 자동차, 전자, 조선 등에 집중되던 산업구조가 점점 첨단분야로 확장되고 그중 혁신신약, 바이오신약 분야가 있다. 최근 한미약품의 세계 제약시장 도전 신화나 바이오시밀러업체인 셀트리온 등 여러 제약회사들이 세계적 제약업체로 성장한 것이 회자되고 있지만 정작 이 회사들은 공통적으로 우수 연구인력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급변하는 미래 산업구조가 절실히 요구하는 기초의약학 분야 등의 고급인재 양성은 현 제도 아래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2+4 약학사제도는 우수한 직업약사 양성에 포커스를 맞춘 제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약사면허증을 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들 중 기초약학연구분야 대학원에 진학할 인재는 많지 않다. 6년이나 교육받은 인재들이 매년 1700명씩 약사로 배출되는데 이들 중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전에 비해 오히려 급감해 첨단의약학분야의 전문가 양성이 어렵다.

요즘 청년 취업난으로 학생들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스펙을 만드는 데만 고심하고 실제 적성이나 세계 최고를 향한 도전은 학생들이 진로를 정하는 데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몰려다니며 시간을 낭비해서는 우리 국가의 미래가 불안하다. 이렇게 당장 취업이 잘될 것 같은 분야로 몰려 줄서기를 하고 선택받지 않은 나머지들은 낙오자로 낭비되는 교육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 우리는 인재가 낭비되지 않는, 누구나 자기 특기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미래의 인력 수요에 대응하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고등학교에서 약대로 바로 입학해 약사나 기초약학 연구자로 정진하게 하는 제도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성진 이화여대 교수·화학나노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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