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농구 대통령’ 허재의 바람 두 아들 근성있는 선수 됐으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6호 25면

허재 전 KCC 감독과 허웅(23·동부·오른쪽 뒤), 허훈(21·연세대) 3부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박종근 기자

“어휴! 아빠 어젯밤 또 한잔 하셨죠?”(허훈)


“내가 선물한 건강검진권 아직도 안쓰셨죠? 가족여행은 도대체 언제 가나요? 중3 때가 마지막이었네요.”(허웅)


“너희들 걱정이나 해라! 근데 가족여행 가면 경비는 웅이가 내냐, 훈이가 내냐?”(허재)‘농구 대통령’ 허재(51)도 두 아들에겐 잔소리를 듣는 평범한 아버지다. 지난 12일 오전 연세대에서 오랜만에 모인 ‘허씨 삼부자’. 프로농구 KCC감독을 지낸 아버지 허재는 세상이 다 아는 농구 대통령이다. 장남 허웅(23)은 프로농구 동부의 떠오르는 스타다. 차남 허훈(21)은 연세대 선수로 대학농구를 휘젓고 있다. 말은 거칠게 해도 허재 전 감독이 장남 허웅과 차남 허훈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 없이 따뜻했다.


허재는 선수 시절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MVP)을 3차례, 프로농구 MVP상을 1회 수상했다. 감독으로 프로농구 전주 KCC를 이끌고 2차례 우승을 이뤄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지휘봉을 내려놓고 잠시 코트를 떠났다.


첫째 아들 허웅은 프로 2년차 슈팅가드다. 2015-16시즌 평균 12점, 2.9어시스트를 올려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데뷔시즌 기록(4.8점, 1.5어시스트)과 비교해 괄목상대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깔끔한 외모까지 갖춰 올스타전 팬투표 1위(5만518표)를 차지하기도 했다.


둘째 아들 허훈은 연세대 3학년 포인트가드다. 지난달 MBC배 전국대학농구에서 11년 만에 연세대를 정상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프로·아마 최강전에선 국내 최고 포인트가드 모비스 양동근(35)과 맞대결을 펼쳐 23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형제는 나란히 용산중·고, 연세대를 거쳤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어머니 이미수(50)씨는 “웅이는 진중하다. 반면 훈이는 하루종일 떠드는 해피 보이”라고 말했다.


-두 아들이 농구선수로 잘 자랐다.허재=“2005년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갔을 때 두 아들이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웅이는 중 1 때 뒤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많이 발전했다. 훈이는 프로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둘 다 아직 멀었다.”


-아들이 농구하는 걸 반대하지 않았나.허재=“웅이가 어릴적 공부를 잘했다. 외가쪽에 의사가 많아 장차 의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더라.”


허웅=“아빠가 고심 끝에 ‘공부는 2등도 괜찮지만 운동은 1인자가 되어야 성공한다’면서 허락해주셨다.”


허훈=“난 형을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난 원래 꿈이 의사였다. 형이 농구하다가 다치면 고쳐주고 싶었다.”


(어머니 이씨는 “형제가 우애가 깊다. 목욕탕에서 뒤늦게 나오는 훈이가 감기 걸릴까봐 웅이가 수건을 들고 덜덜 떨면서 기다린 적도 있다. 요즘도 형이 동생의 농구화를 사주고, 클럽도 함께 다닌다”고 전했다.)


-삼부자가 닮은점은.허재=“왼손잡이인 나와 달리 둘 다 오른손잡이다. 그런데도 웅이는 내 선수 시절과 슛 자세가 비슷하다. 훈이는 배짱 두둑한 플레이와 툭 튀어 나온 엉덩이가 닮았다.”


허훈=“다른 사람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일주일 걸려 만드는 근육을 난 2~3일만 하면 붙는 편이다. 집에서 속옷만 입고 있으면 아빠가 ‘예전 내 몸과 똑같다’고 한다.”


-아버지가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본적이 있나.허웅=“1997-98시즌 기아 시절 챔프전 하이라이트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빠가 손목이 골절됐는데도 투혼을 발휘해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 왜 ‘농구 대통령’이라 불리는지 알겠더라.”


허훈=“형! 우리도 하이라이트만 보면 엄청 잘해 보일 걸. 요즘은 아빠 경기영상 대신 ‘불낙 동영상’만 뜨던데. 헤헤.”


(허재는 2013년 KCC 감독 시절 심판 판정에 불같이 항의하면서 “이게 블록이야” 라고 수차례 외쳤다. 농구팬들은 ‘블록’이 ‘불낙’처럼 들린다며 불낙전골 광고와 합성한 영상을 만들었다. 지난 시즌 허웅이 완벽한 블록슛을 해내면서 또 한차례 화제가 됐다.)


허웅=“아버지가 항의하는 동영상을 보고 ‘빵’ 터졌다. 당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4위가 허재, 불낙전골, 불고기, 낙지였다.”


허재=“그런데 웅이처럼 무턱대고 러닝 스텝을 밟으며 블록슛을 하면 다칠 수 있다. 지난 10일 복싱 8체급을 석권한 매니 파퀴아오의 은퇴 경기를 봤나. 파퀴아오는 38세인데도 스텝을 밟으면서 ‘따당따당’ 주먹을 날린다. 난 선수 시절 줄넘기 2단뛰기를 3분, 12라운드를 반복했다. 농구도 복싱처럼 스텝이 중요하다. 상대의 허점이 보이면 죽기살기로 치고 들어가야한다. 상대가 겁 먹어서 떨 정도로.”


-허재 전 감독은 전성기 때 슛 성공률이 몇%였나.허재=“나도 기껏해야 성공률이 30%대였다. 슛이 터지는 날에는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쐈다. 하지만 슛이 안 들어가는 날에는 돌파나 속공을 했다. 루스볼(어느 팀의 공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태의 공)이 생기면 몸을 던졌다. 두 아들도 근성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중앙대 시절 선수 허재는 한 경기에서 75점을 넣었다. 국가대표로 1990년 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는 62점을 몰아넣었는데.허훈=“후배들이 아빠한테 밀어주기 한거 아냐? 근데 나도 아프리카 선수들을 상대해봤는데 팔도 길고 상대하기 버겁더라. 62점은 인정!”


-‘허재의 아들’로 농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허웅=“농구하면서 아버지의 반만 따라가도 성공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아 노력하고 있다.”


허훈=“난 한 번도 부담을 느낀 적이 없다. 가끔 악성 댓글을 보면 ‘멋진 아버지를 둔 게 부러워 그런가보다’ 라며 쿨하게 넘긴다.”


허재=“애들이 티를 안냈지만 분명 힘들었을거다. 둘 다 청소년대표팀에 뽑혔을 때 ‘허재 아들이라서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참 가슴이 참 아팠다. 농구를 뒤늦게 시작한 웅이는 노력을 많이 했다. 김영만 동부 감독이 그러는데 한 밤에 숙소에서 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웅이가 방 안에서 드리블 훈련을 하고 있었다더라.”


-미국프로농구 전설의 3점 슈터 델 커리(52)의 아들 스테판 커리(27·골든스테이트)는 이제 아버지보다 유명해졌는데.허훈=“올 시즌 NBA 최초로 한 시즌 3점슛 400개를 돌파한 커리는 인간이 아닌 득점기계 같다. 나도 커리처럼 이 시대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 사실 난 아직 대학리그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아니다. 아빠 말처럼 듣기만 해도 벌벌 떠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언젠가 3부자가 한팀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허훈=“아빠! 1년이면 쉴 만큼 쉰거 아닌가요. 다시 코트에서 뵙길 바래요. 난 40세까지 농구할 거니까 말년엔 3부자가 한 팀에서 뛸 수도 있지 않을까요.”


허재=“기회가 되면 농구계로 돌아가고 싶다. 두 아들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