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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중구난방 국민의당 … 635만 표심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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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지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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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

“제발 좀 싸우지 마소. 잘 좀 하이소.”

지난 19일 오후 5시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방문했다는 소식에 모여든 시민 중 한 명이 안 대표의 팔짱을 끼고 한 말이다. 한 시민은 “잘만 하이소. 그라믄 다음에 뽑아 드리겠습니더”라고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힘을 얻고 간다는 서문시장. 환대를 받은 안 대표는 놀란 표정이었다.

국민의당은 전국 정당 득표율에서 26.7%로 새누리당 33.5%에 이어 2위를 했다. 제1당 더불어민주당(25.54%)보다 정당 득표는 많이 받았다. ‘문제는 정치다’ ‘싸움만 하는 양당정치를 바꾸겠다’는 국민의당의 약속을 믿고 635만5572명의 유권자가 표를 내줬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이런 표심(標心)에 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부터 자기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가 논란이 되면 모두 ‘개인 의견’이라고 피해 버린다.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18일 당 최고위원회의. 천 대표는 “청문회·국정조사 등의 모든 의회 권력을 발휘해 구(舊)정권 8년의 적폐를 단호히 타파하겠다”고 강조해 논란을 일으켰다. ‘민생국회’ 대신 과거사 캐기를 앞세우자 안 대표 측은 “개인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주승용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된 바도 없는 개인 의견”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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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일엔 안 대표의 말이 ‘개인 의견’이 돼 버렸다. 안 대표는 지난 15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 결선투표제’를 주장했다. 대선에서 과반이 안 되면 1, 2위가 다시 투표하는 제도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선거법 개정만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대표의 개인 생각”이라고 했다. 원내대표가 개인 생각인지 당론인지 감별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국회의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안 대표는 19일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에 따르는 게 순리”라고 말해 사실상 1당인 더민주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천 대표는 20일 “정당이 다가 아니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당권 문제를 놓곤 천 대표가 “외부에 아주 좋은 인물이 있다면 내부 합의를 전제로 (당 대표) 추대를 못할 것도 없다”고 주장하자 곧바로 박지원 의원이 “경선이 원칙”이라고 반발했다. 안 대표는 “아직 의논해 본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4·13 총선이 끝난 지 이제 일주일이다.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나오는 ‘개인 의견’이 국민의당은 좀 다를 거라는 기대에 부응하는 것일까.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