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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나침반] 색깔 있는 볼거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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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백남봉은 대한민국의 엔터테이너이고 백남준은 세계적 아티스트다. 백남봉은 사물과 현상을 인간의 소리로 번역하는 데 천재적이었고 백남준은 사물과 세상의 어긋난 만남을 비디오를 통해 우회적으로 보여주었다.

다르게 살아왔고 다르게 살고 있고 다르게 평가받고 있지만 목표는 자아실현이고 행복추구라는 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살인의 추억'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공교롭게도 모두 봉감독의 작품이다. 봉준호와 봉만대. 둘은 비슷한 시기(1980년대)에 같은 학교(연세대)를 다닌 젊은 영화인들이다.

거죽만 보면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관심을 표명한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불통을 천착하고 있다. 취향(趣向)은 다르지만 지향(指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감각이 생각보다 더 앞서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감각과 생각(의식)을 해부하여 관찰하거나 검증하기란 수월치 않다. 다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각과 의식이 눈앞에 보이는 작품(상품)에 대해 느낀 바를 담담히 말할 수 있을 뿐이다.

TV 시티즌에게 월요일과 화요일 밤 10시대는 지금 즐거운 축제기간이다. "더 이상 안 속는다"라며 절교를 선언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바보상자'일지 모르지만 한 가닥 신뢰를 디저트처럼 남겨둔 이들에겐 모처럼 '안방극장'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시절이다.

KBS 1TV를 뺀 나머지 세 채널이 다양한 빛깔의 드라마로 손님을 끈다. 제작진이야 속이 바짝 타들어가겠지만 시청자는 어떤 '극장'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다. '야인시대'(SBS)는 서사적인 캐릭터들의 경연장이다.

시대 앞에서 쾌활한 자와 교활한 자들의 전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옥탑방 고양이'(MBC)는 서정적인 캐릭터들이 아웅다웅 부딪치는 모습이 상큼하다. 옥탑방의 남루함은 단지 젊음의 싱싱함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일 뿐이다.

늦게 뿜어내기 시작한 '여름향기'(KBS 2)는 서경적(敍景的)인 화면이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시가 '아름다움의 운율적 창조'라면 '여름향기'는 일종의 영상포엠이다.

곧은 길을 곱게 보여주려 하는 이도 있고 고운 길을 곧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무수하다. 백남봉의 연희(演戱)는 웃고 나면 그뿐이라는 건 속단이자 실례다.

그가 생산해낸 웃음은 오랜 시간 대중을 위로한 공로가 있다. 백남준의 실험작품은 골치 아프다는 판단도 경솔하다. 수수께끼 같은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정서와 사상을 추려내는 재미는 웬만한 추리소설 읽는 재미보다 백 배 더 나을 수 있다.

취향에 섣불리 등급을 매기려 하지 마라. 차라리 그 시간에 창작자의 지향을 헤아리는 게 유익하다. 월요일 밤 채널을 숨가쁘게 돌려가며 문득 다양성이야말로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미덕임을 새삼 배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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