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122석은 주식으로 치면 하한가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얻은 121석보다 1석 많다. 당시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란 명확한 악재에서 치른 선거라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결국 15대(1996년) 139석, 16대(2000년) 133석, 18대(2008년) 153석, 19대(2012년) 152석이란 역대 전적을 떠올려보면 이번이 20년 내 최악의 성적표나 다름없다.

황 총리 ‘국민 뜻 수용’ 언급도 안해
총선 참패, 내각제라면 총사퇴해야
청와대 “총선으로 참모 경질 없어”

하지만 여권을 통틀어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당에선 김무성 대표가 물러나긴 했지만, 이미 “총선 직후 조기 사퇴하겠다”고 공언해 온 상태였다. 다른 최고위원들도 동반 사퇴하긴 했지만, 총선 직후 14일 열린 심야대책회의에서 일부 최고위원들은 끝까지 “자진 사퇴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회의의 결론도 공동선대위원장인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에 앉혀 당 수습을 맡기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비박계 정두언 의원은 18일 라디오에 출연해 “주변에서 ‘원유철 비대위원장을 앉히는 새누리당에 뭘 기대하겠느냐’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17일 원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이 동참했다.

눈을 청와대와 정부로 돌리면 더 심하다. 지난 13일 세종시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황교안 총리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여당의 참패로 끝난 뒤 아무 얘기가 없다. 집권 4년 차에 치른 선거인 만큼 국민이 심판한 건 집권당뿐 아니라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도 포함된다. 그런데도 내각의 수장인 총리는 하다못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는 말도 없다. 내각제 국가라면 총리를 비롯한 모든 장관이 사퇴를 했어야 할 정도의 선거 결과다.

청와대도 참패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국민 심판의 상당 부분은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현기환 정무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설도 돌았지만, 설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총선 때문에 박 대통령이 참모진을 경질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모습은 ‘여당 선거 참패→당·정·청 인적 쇄신’이란 정치권의 공식과 배치된다. 이명박(MB) 정부에서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광역단체장 선거 16곳 중 6곳에서만 승리)하자 대통령실장과 주요 수석들이 사퇴했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인적 쇄신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사과의 징표’로서 야당에 정부를 도울 명분을 주는 효과는 있다”며 “이런 데서 야당과의 협치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더민주(30.4%)에 뒤지는 27.5%였다. 20%대 지지율은 2012년 5월 이후 처음이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