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산골서 담근 깊은 맛 나는 장에 민들레 겉절이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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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28면

오징어미나리전, 우엉잡채, 민들레 겉절이. 몸이 절로 건강해 질 것 같은 건강식이다. 여기에 막걸리 한 잔(딱 한잔!) 하면 금상첨화다.

요즘 한식당 중에 직접 장을 담가 사용하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정확한 비율은 모르지만 꽤 드물 것이다. 밑반찬을 ‘공장’에서 공급받아 쓰고, 음식 재료도 손질이 다 된 반가공품 상태로 사서 쓰는 식당이 즐비한 것이 현실이다. 손은 많이 가는데 생색도 별로 안 나는 간장·된장·고추장을 사서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치열한 생존 경쟁 때문에 효율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우리 고유의 ‘정성스러운 맛’을 더 이상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직접 담은 재래식 장을 사용해서 만든 음식은 맛이 깊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일반 장으로 간을 맞춘 음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물 하나를 무쳐도 재래식 간장 몇 방울 떨어뜨린 것이 훨씬 맛이 풍부하고 여운이 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옛날 입맛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볍고 달콤한 맛보다는 깊고 묵직한 맛이 훨씬 더 좋다. 사람도 가볍기보다는 무겁고 진중한 ‘진국’이 좋고.


가끔, 아주 가끔, 예전에 해오던 대로 손수 장을 담가 사용하는 식당을 만날 때면 반가운 마음부터 앞선다. 옛 맛을 지키려는 뚝심 있는 분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음식의 기본이 잘 돼 있고 맛도 뛰어나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장을 준비하는 데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데 음식을 허투루 만들 리가 없다.


‘아침가리긴밭’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식당은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아는 분 소개로 갔다가 장맛, 음식 맛에 반해 단골이 됐다. 전용희 대표라고 하는 ‘소신 강한’ 분이 운영하고 있다. 2011년 6월에 개업했다.


전 대표는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지인들과 함께 농사를 지은 콩으로 메주를 쒀서 장을 담근다. 인제군에 있는 내린천 상류 지역의 ‘아침가리골’이라는 오지다.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곳에 있어서 아직도 청정 지역으로 남아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좋아해서 그곳 자연과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것이 수십 년 되었다고 한다. 아예 그곳에 밭을 마련해 직접 농사를 짓고, 장독대까지 만들어서 장과 김치를 담아 온 지도 꽤 오래됐다.


원래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 취미로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궁중음식, 중국음식까지도 고루 섭렵했던 전 대표는 결국 자연스럽게 자신의 요리를 하는 음식점을 시작하게 됐다. 아침가리골에서 자연 농법으로 농사지은 각종 채소와 주변에서 채취한 산나물 등 ‘건강한 식재료’를 이용해 ‘건강한 음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식당 이름을 그곳 이름을 따서 붙였다.

▶아침가리긴밭 :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63-4 전화 02-451-0101 우엉잡채 2만5000원, 오징어미나리전 2만5000원. 홍어맛 좀 안다는 분들은 홍어전에 도전해 보셔도 좋다. 단, 조금 식힌 다음에 먹을 것을 추천한다.

이곳 음식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중부 지방 음식이 중심이다. 서울이 고향인 전 대표가 어릴 적부터 익숙해진 음식이다. 퓨전식으로 변형하지 않은 우리 고유의 음식을 주로 하는데, 재래식 장을 사용한 때문에 깊은 맛이 나면서 맛깔스러운 것들이 많다.


‘우엉잡채’ ‘오징어미나리전’ 같은 것들은 다른 곳에서 먹어보지 못했던 이 집만의 독특한 메뉴다. 우엉을 일일이 손으로 채를 치고 표고·당근·콩나물·미나리 그리고 쇠고기를 섞어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한 우엉잡채는 사각사각 씹히는 고급스러운 맛이 일품이다(당면은 없다). 노릇노릇하게 부쳐 내는 오징어미나리전은 통통한 오징어의 씹히는 맛과 상큼한 미나리의 조화가 아주 좋다. 맛도 맛이지만 모두 건강식이라는 느낌이 절로 드는 균형 잡힌 음식들이다. 여기에 인제에서 전 대표 지인이 직접 담아서 보내준다는 특별한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면 좋을 ‘호(好)’자가 절로 나온다.


얼마 전 이곳에 갔을 때는 ‘민들레 겉절이’를 서비스로 얻어먹었다. 민들레는 하찮은 것 같지만 미식의 본 고장 프랑스에서도 계절 별미로 인정받는 음식 재료다. 봄에만 잠깐 맛볼 수 있다. 몸에 좋은 각종 성분이 들어 있으면서 봄철의 나른한 입맛을 살려주니, 이런 멋진 봄 맞이 음식이 또 없다. 배추 겉절이처럼 매콤하고 간간하게 무쳐낸 민들레가 쌉쌀하게 입맛을 자극하는 것이 온몸에 봄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것만 같다.


계절이 바뀔 때면 단골들은 이렇게 깊은 산골에서 나오는 향긋한 별미를 얻어먹는 행운을 누린다(단골에 밑줄 쫙). 봄이 더 무르익으면 야생 곰취, 여름이 되면 엉겅퀴 나물이다. 자신의 음식을 알아주는 사람들과 같이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전 대표의 ‘언니’ 마음이다. 그 정이 고마운 사람, 그리고 음식 맛 좀 안다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이곳이 ‘방앗간’이다. ●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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