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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세월호 2년, 안전 교육 별로 안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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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H고 학생들이 화재대피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서울 H고 학생들이 화재대피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교육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커져 법적, 제도적 정비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 지난해부터 일선 학교(초3~고3)의 안전 교육이 연간 51차시로 의무화됐고 내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은 안전 교과 신설해 배운다. 교대와 사범대에 안전 교과를 한 학기 강좌로 이수토록 한 법도 제정됐다.

이렇게 안전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교육 시간도 늘렸지만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인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이 여전히 많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TONG청소년기자들이 학교 안전 교육 실태를 살펴본 결과 전국 18개 고교 가운데 4~5개만이 안전교육이 유익했다는 평가를 보내 왔다. 나머지는 예전처럼 동영상 단순 시청이나 형식적인 훈련에 그쳐 별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들 엎드려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데요.”

“다음 교시에 있을 영어 단어 시험을 준비했어요.”

사이렌이 울리면 수업을 멈추고 잠깐 ‘딴짓’을 하던 과거의 민방위 훈련 얘기가 아니다. 세월호 이후 그렇게 학생들의 안전을 강조해 온 지금도 학교에선 여전히 안전 교육이 시간만 때우는 일로 치부되고 있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고등학교들이라 더욱 더 교과목 수업 시간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는 데다 학생들도 당면한 공부가 바빠 안전 교육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서울의 M고와 S고는 “안전 교육을 특별히 받은 것이 없다”고 답해 뇌리에 남는 내용이 없었음을 고백했다. 경기도의 S고 역시 “강당에 모여 PPT 강의식으로 진행했던 것 같지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체험학습 가기 전 교통수단 이용 시 주의할 점 등을 설명 들었지만 실제 상황에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대부분 화재나 지진 대피 훈련 등을 학교에서 몇 차례 실시했더라도 정말 응급할 상황일 때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충북의 I여고는 “반별로 나가 줄을 서서 화재 대피 훈련을 했지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산의 B고도 “기숙사 화재 소방 훈련을 해마다 했다”면서 “사이렌이 울리면 수건으로 입을 막고 줄을 서서 1층으로 내려간 게 전부”라고 소개했다.

일선 학교에서 과거보다 훈련 횟수 등 안전 교육이 크게 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의 Y여고는 “한 학기에 한 번씩 지진 대피 훈련을 하고 방송으로 생명존중 교육을 받았다”면서 “그냥 종이 치면 나가서 출석 체크 후 들어오는 형식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방송도 틀어주기만 할 뿐 제대로 듣는 친구가 없다”고 덧붙였다.

빈번히 이뤄지는 교육 내용이 이론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C중·고는 “위험할 때 어떻게 하라는 대비 전략이 아니라 ‘몇 명의 학생이 한 명의 보호자나 교사와 동행해야 한다’는 준수사항 위주로 가르쳐 줬다”고 전했다. 특히 ‘100명 이상이 한 장소로 동행하는 것을 금한다’는 조항에 학생들은 실소를 보냈다. ‘죽을 거면 다 같이 죽지 말고 나눠서 죽으라는 소리냐’며 냉소했다.

학생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있다. 2015년 심폐소생술 개정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반인은 기존의 기도확보와 인공호흡 과정 없이 119에 신고 후 가슴압박만 하도록 변경되었다. [사진=중앙포토]

학생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있다. 2015년 심폐소생술 개정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반인은 기존의 기도확보와 인공호흡 과정 없이 119에 신고 후 가슴압박만 하도록 변경되었다. [사진=중앙포토]

반면 내실 있게 교육이 잘 이뤄져 도움이 됐다는 학교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안전 교육도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얼마든지 쓸모가 있을 것이란 반응이다. 군산여고 재학생은 “지난해 7월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심장 제세동기를 실제로 작동해 봤다”면서 “이후 우리 주변에 제세동기가 많이 설치된 걸 알게 됐고 내가 사용할 수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 H고교 재학생도 “마네킹으로 응급 처치하는 법을 자세히 배웠고 지진 대피 훈련도 계속 실시해 까먹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학교가 부쩍 많아졌다. 전북사대부고 재학생은 “지난 1년간 학교폭력과 자살, 약물 오남용 등 다양한 예방 교육과 함께 심폐소생술 및 제세동기 사용법을 익혔다”고 했다. 재학생들의 자격증 취득으로 이어진다는 전언도 있었다. 청심국제고 재학생은 “지난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한 뒤로 일부 학생들이 졸업 후 심폐소생술 자격을 취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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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외고는 '안전가요제', '안전기네스', '심폐소생술 교육' 등의 현장감 있는 안전교육을 실시해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진=성남외고 홈페이지]


‘안전 학교’로 지정돼 안전가요제 등 다양한 캠페인을 벌인 곳도 있었다. 성남외고 재학생은 “가요를 개사해 복면가왕 형식으로 부르기도 하고 CPR과 RICE를 주제로 연극을 발표하기도 했다”며 안전 교육을 딱딱하지 않게 치른 좋은 사례가 됐다.

박상근 서울시교육청 안전관리 사무관은 “그동안 안전 교육이 의무가 아니라 학교장 재량으로 창의적 체험 수업 때 하는 37가지 활동 중의 하나로만 인식돼 왔다”면서 “앞으로는 의무화된 안전 교육을 실효성 있게 운영하도록 예산(학교당 100만 원씩)을 배정키로 한 만큼 올해부터 피부에 와 닿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간 10만 명이 다녀가는 보라매, 광나루 안전체험관 같은 시설을 확충하고 이동버스를 도입해 안전 체험 교육 공간을 늘리기로 했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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