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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 다음은 어느 기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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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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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경제부문 차장

매각을 포함한 그간의 이런저런 시도들이 모두 무위로 돌아간 블랙베리가 그야말로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만간 안드로이드폰 2종을 새롭게 내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존 첸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9월까지 하드웨어 부문의 수익이 개선되지 않으면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시도인 안드로이드폰 2종이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으면 휴대전화 사업을 접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말 내놓은 전략 안드로이드폰 ‘프리브(Priv)’ 등을 포함한 블랙베리의 휴대전화는 지난해 4분기 고작 60만 대 팔리는 데 그쳤다. 지난해 3분기엔 70만 대 팔렸다. 연간 5000만 대를 팔아야 적자를 벗어나는데 말이다.

이번 발표에도 “10년간 블랙베리만 써왔는데 이번에 Z10 버리고 삼성전자 갤럭시S7으로 갈아탔다” “프리브가 좋긴 하지만 소비자 중 누가 그 사실을 아는가, 마케팅은 어디 갔나” 같은 혹평성 댓글만 미국·유럽 네티즌 사이에 무성하다.

1999년 나온 블랙베리는 e메일·메시징 기능이 호평을 받아 업무용 휴대전화의 대세로 떴다. ‘오바마폰’으로 불리며 2009년까지 북미 지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51%를 달렸다. 지금은 1% 정도다. 매각 얘기도 나오고 토치·스톰 시리즈에 블랙베리10, 그리고 이번 프리브까지 신제품을 잇따라 내놨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다음 단계 대비가 한 발짝 늦었다는 것, 그리고 시장의 경쟁자를 우습게 봤다는 것이 블랙베리의 패착이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과 iOS를 들고 나왔을 때 블랙베리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경쟁력 있는 신제품 대신 소프트웨어 조정에만 신경을 썼다. 특히 자체 운영체제로 앱 사용이 제한적이란 한계가 결정적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시장은 이미 변해 있었다. 포레스터리서치와 가트너 등 업계 전문가들은 “블랙베리 10은 출시가 2년이 늦었고 프리브는 너무 비쌌다”고 평가한다.

시장은 블랙베리에 아예 스마트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틈새를 노리는 소프트웨어·보안 회사로 변신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보안 기술과 소프트웨어 기술이 그래도 우수해 돈 먹는 하마인 스마트폰 부문만 청산하면 그럭저럭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부문을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팔고 벼랑 끝까지 갔다가 요즘 통신 전문 기업으로 다시 부활한 노키아에서 배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 회사 자체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점까지 몰렸다.

5년은 자만에 빠진 글로벌 1위를 바닥까지 내동댕이치기에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기술 우위에, 무수한 특허를 갖고 있는 블랙베리도 이 지경인데 기술을 선도하기보단 추격자로 지내기 바빴던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미래에 대비할 것인가. 블랙베리 다음은 어느 기업인가. 후보 리스트는 매우 길다.

최지영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