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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2차임기 두달…정치생애의 정상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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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레이건」미대통령은 지금 그의 20년 정치생애가 그려온 곡선의 정상에 올라있다.
대통령선거에서 전후 최대의 압승을 거둔데 이어 그는 첫 취임 때보다 더 높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그의 정치생애의 마지막이 되는 통치 제2기의 문턱에 서 있다.
지난 4년동안의 실적을 놓고 이제 아무도 그가 정치적으로 미숙한 배우의 한 변신에 불과하다는 취임초기의 조롱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레이건」의 2기 취임을 맞아 미국의 주요신문들은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모두 한번씩은 다루었다.
대부분의 신문과 논객들은 그가「프랭클린·루스벨트」이래 가장 유능한 대통령이었으며 2기 통치의 기회가 없었더라도 미국 대통령이란 관직의 권위와 위력을 소생시킨 공적은 역사의 족적으로 분명 남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레이건」의 정치적 실적은 구체적 정책보다 미국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정립했다는, 정책을 넘어선 차원에서 평가되고 있다.
구체적 정책분야에서 그가 내세울만한 실적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집권초기의 혹심한 불황이 83년부터 공전의 호황으로 호전되어 그의 압승에 결정적 요인을 제공했지만 그것이 그가 초기에 제창했던 이른바「공급측면 경제학」의 결과라고 보는 학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와서「레이건」자신이나 그의 보좌관들마저 레이거노믹스를 거론하지 않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외교면에 있어서도 중동정책의 실패를 비롯, 미-중공, 미-소 관계에서「레이건」이 처음 제창했던 정책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으며 결국 초기정책을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되었다.
「레이건」은 국민들이 낙관적 세계관을 갈망하기 시작한 시기에 낙관주의를 제공함으로써 월남전이래 실의에 빠져들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자신감과 새로운 방향감각을 소생시켜 주었다. 국민들은 이에 대해 격승으로 보답한 것이다.
국론을 양분시킨 월남전을 겪으면서 미국은 2차대전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힘의 한계를 느꼈다.
그 충격은 미국사회가 안주했던 전통적 자신감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뒤이어 워터게이트사건과 단임으로 끝난「포드」·「카터」행정부, 그리고 미국의 좌절감을 극도로 시험한 이란 인질사건 등을 체험한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낙관적인 그들의 자기평가를 재확인해야할 절박한 심리적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레이건」은 바로 이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는 그 특유의 호인풍의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발휘, 애국심과 자신감과 국민적 목적 의식을 연설 때마다 에피소드를 동원해 설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응원단장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대통령직책에 대해 실망을 겪고 있던 미국인에게 부권상을 심어주고 대통령직의 권위를 소생시켰다.
84년의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미국인들 사이에 애국심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월남전이래 누적되었던 좌절감에 대한 반작용이긴 하지만「레이건」의 그런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그와 같은 국내상황은 국제적으로도 미국세를 뻗쳐 달러화강세에 기여하고 모스크바로부터 파리·본·런던 등 서구수도들이 워싱턴 정책에 그들의 정책을 적응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그의 낙천성은 특히 83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미국 경제회복세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모든 경제 전문가들이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던 82년 그는 혼자서 경제호전을 역설하고 다녔다. 83년 경기호전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자신의 경제자문관까지도 호전의 폭과 지속성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했지만 그는 이를 일축하고 폭넓은 경제회복을 예언했으며 결국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레이건」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초기에 너무 방만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임자인「카터」는 주름살이 눈에 띄게 늘어날 정도로 일에 전념했던데 비해「레이건」은 여느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하며 수요일 오후는 으례 쉰다. 거기다가 짬만 나면 샌타클레라의 자기 목장에 가서 휴가를 즐긴다. 각의는 15%정도만 주재하며 주재할 때도 앉아서 조는 때가 자주 있다고 측근이 공개한 적이 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간단한 메모 몇장으로 보고받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스타일은 그가 공석상에서 자주 잘못된 숫자나 사실을 발설하는 것과 함께 그가 무식하다는 비난의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4년의 통지를 겪고나서 그러한 스타일은 더이상 흠으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임분야를 부하에게 많이 떠말기고 정책방향을 주도하는데 역점을 둠으로써 오히려 더 원대한 안목으로 효과적인 통치를 할 수 있다고 지지자들은 옹호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온 것이「우주전쟁」으로 불리는 전략방어계획(SDI)이다.
지금까지 미소 핵억제 전략은 이른바 대량보복(MAD) 개념에 바탕을 두어 왔다. 상대방이 핵공격을 해올 경우 미국은 대량으로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핵무기를 확보해 놓음으로써 역으로 소련의 핵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처음「슐츠」국무장관과「와인버거」국방장관은 모두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계속 고집, 지금은 대소협상의 중요한 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레이건」대통령의 역사적 평가에 핵심적 요소를 제공할 실적은 앞으로 미소 핵협상을 포함한 2기 정책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전망이다. 초기의 냉각됐던 미-중공관계가 결국 양국관계의 급속한 호전의 원동력이 되었듯 취임1기의 미소냉각관계가 2기의 공존관계 구축에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소련에「고르바초프」라는 강력한 새 지도자가 등장한 것과 같은 시기에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미국대통령이, 회복된 미국의 국력을 배경으로, 대소 이니셔티브를 쥔 것은 세계평화에 새 전기를 기대해 볼만한 무대설정이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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