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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드레스, 뿌리 살린 부케…300쌍 에코웨딩 이끈 이경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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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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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해가 덜 가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이경재 대표. 한산모시와 옥수수 전분, 한지 등 친환경 소재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들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회적 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경재(37) 대표는 결혼식 전문가다. 친환경 결혼식과 작은 결혼식, 그리고 마을 결혼식이 그의 사업 방향이다. 2008년 회사를 차린 이후 300여 쌍의 부부가 그의 뜻에 동참했다. 2013년 가수 이효리의 결혼식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합리적인 결혼식을 올리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 대표
가수 이효리 결혼식도 기획
지역 살리기 ‘마을웨딩’추진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첫 직장은 방송사 의상실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실제 옷 디자인을 해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각 프로그램의 의상은 대부분 협찬을 받아 해결했다. 그는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지 설명할 게 없었다. ‘어디어디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를 넘어서는, 내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1년여의 짧은 직장 생활을 끝내고 그는 강원도 횡성 신대리로 갔다. 여행을 하며 알게 된 마을이었다. 펜션을 위탁운영하며 시골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관심사는 환경으로 모였다. 2005년 ‘그린디자인’ 전공으로 국민대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인 친환경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5년에 유명 연예인들의 결혼식이 많았어요. 연예인들이 입은 몇 천만원짜리 드레스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걸 보면서 옷으로 인한 환경 피해를 생각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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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드는 웨딩드레스는 옥수수 전분과 한지·쐐기풀 등을 소재로 쓴다. 땅에 묻으면 쉽게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원단이다. 또 결혼식이 끝난 뒤 일상복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짧은 원피스 위에 롱스커트를 덧붙였다 떼어냈다 하며 두 벌의 효과를 내는 식이다. 드레스에서 출발한 그의 친환경 결혼식 아이템은 화분을 이용한 꽃 장식과 뿌리째 살아 있는 부케, 액자로 재활용할 수 있는 청첩장 등으로 점점 영역이 넓어졌다.

예산 600만원에 맞춘 ‘작은 결혼식’도 기획해 2013년 개관한 서울시 시민청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예비부부 두 사람이 한 달에 50만원씩 6개월 동안 모으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의 회사는 2010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수익금으로 매년 저소득층 부부 2쌍에게 무료 결혼식도 올려준다.

지역사회의 경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2013년 시작한 ‘마을웨딩’은 그가 요즘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웨딩드레스·사진 촬영·메이크업 등을 모두 서울 강남에 가서 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성북구의 음식점과 미용실·꽃집 등을 이용해 성북구 안에서 결혼식을 치른다. 그는 “갈비탕으로 유명한 맛집에서 갈비탕을, 만두 잘 빚는 식당에서 만두를, 커피 맛 좋은 카페에서 더치 커피 원액을 배달받아 결혼식 음식을 장만하니 뷔페 업체보다 훨씬 맛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배달이 어려운 샐러드 등 나머지 음식 준비는 삼선동 장수마을 할머니들에게 일당 8만∼10만원씩 주고 맡긴다.

“‘마을웨딩’을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하고 싶다”는 그는 “이를 위해 지난해 ‘마을웨딩 지원센터’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올해는 서울 은평구에서 시작해 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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