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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과학자 60년간 AI 헛발질,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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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간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살아가는 ‘포스트 휴먼시대’가 열리고 있다. AI 분야 저작으로 유명한 국내외 석학들의 인터뷰를 싣는다. AI시대의 의미를 두루 짚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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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교수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고 했다. “비정량화된 정보를 학습하는 ‘딥러닝’ 기능이 구축됐으니, 인공지능 발전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또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면서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뇌과학 전문가 김대식(47)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공지능의 시대는 시작됐다”며 “우리에겐 행운”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인공지능 개발에 나선 서구의 과학자들이 60년 가까이 ‘헛발질’을 해 우리나라가 따라갈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 첫번째 역사적 행운이고, 최근 알파고와의 대결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인공지능이란 새 기술에 눈을 떴다는 것이 두번째 행운”이란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의 빅퀘스천』 등을 통해 뇌의 작동 원리와 인간 삶의 문제를 연결시켜 풀어온 과학자다.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를 짚은 새 책 『인간 vs 기계』 출간을 앞둔 그를 만났다.

서구 과학자들이 ‘헛발질’을 했다는 의미는.
“비행기 개발 과정과 비슷하다. 과거 인류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날 수 있는 존재인 새를 모방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도 새처럼 펄럭펄럭 대는 날개를 만들었다. 모두 실패했다. 19세기 초에 와서야 인류가 몇 천년 동안 알고 싶어했던 ‘날기’의 비밀이 밝혀졌다. 날개의 위와 아래 평면 모양이 달라 공기 흐름의 속도가 다르다는 ‘공기역학’이 핵심 요소다. 그 원리를 이해하고서야 비행기를 만들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지능’을 만들어내기 위해 뇌를 연구하고 흉내내 봤지만, ‘기호’와 ‘논리’란 맹점에 빠져 50여 년을 허비했다. 2012년에 와서야 인공지능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됐다. 서구 과학계의 이런 헛발질이 없었다면 우리는 근대화에 이어 인공지능에서도 그들을 못 따라갔을 것이다. 지금은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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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맹점’의 출발을 서양 철학에서 찾았다. “존재는 하나”라는 주장으로 세상 만물이 하나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상을 전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자연은 숨은 걸 좋아한다”라고 말해 과학적인 탐구욕을 자극한 헤라클레이토스,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논리’를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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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이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믿음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세상의 모든 것은 기호로 표현할 수 있다’이고, 둘째는 ‘기호와 기호와의 관계만 논리적으로 잘 연결하면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였다. 첫번째 믿음이 문제였다. 1950년대부터 서구 과학자들은 컴퓨터에 정량화된 정보를 집어넣어 인공지능을 만드는 방법을 시도했다. 수학 문제는 빠르게 해결됐다. 처음엔 ‘아! 아리스토텔레스 말이 맞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컴퓨터는 걷기나 얼굴 인식 같이 ‘인간에게 쉬운 일’을 해결 못했다. 이 세상 정보 중 언어를 비롯한 기호로 표현 가능한 정보는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기호로 표현 못하는 90% 정보는 무엇인가.
“우리가 ‘직관’이라고 말하는 요소다. 외계인이 우리에게 와서 ‘팔을 어떻게 드냐’고 물었다고 치자. ‘그냥 들면 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일어나는 일은 ‘신경세포 몇 번 몇 번은 어떻게 움직이고 몇 번 세포는 쉬고…’겠지만, 이런 식의 답은 아무도 못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분명히 학습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정보인데도 기호로 맵핑이 안되는 지식을 우리는 직관이라고 한다. 인간도 직관은 책이나 말로 배울 수 없다. 기계도 마찬가지다. 기호로 표현 못하는 비정량화된 정보를 학습하는 과정이 기계에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인공지능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인간이 일일이 정보와 판단 기준을 입력하지 않아도, 기계가 스스로 정보를 모으고 추상화시켜 학습하는 ‘딥러닝’이 인공지능의 핵심 원리다.”
기계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학습하나.
“뇌 신경세포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한 인공신경망 방법을 쓴다. 인간이 물체를 인식할 때 사용하는 신경망은 10∼15층 정도다. 층수가 높을수록 더 추상화된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이번에 알파고는 48층 높이의 인공신경망을 사용했다. 현재 최신 딥러닝의 층수는 152층까지 발전됐다. 우리는 이번 알파고의 바둑 대결만 알고 있지만, 이미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은 여럿 등장했다. 최근 3년 사이 얼굴과 사물 인식에서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 인공지능은 신경망 층수를 100만층, 1000만층까지 확대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모르는 우주의 원리와 주식 시장의 움직임, 10년후 일기예보 등을 인공지능은 알아낼 수도 있다.”
인간처럼 자아를 갖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인공지능도 가능할까.
“그런 ‘강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순간, 인류를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지적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는 갖지 않고 있다. 잊어버리지 않고, 밥도 안 먹고, 죽지도 않는다. 인공지능이 독립성을 갖게 된다면 인간이 콘트롤할 수 없다. 인문학자들은 인간의 정신과 자아는 인간만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정신과 자아를 만드는 방법을 인간은 모르지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찾아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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