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부탁 안 들어주고 자꾸 피하나”…아는 경찰관에게 황산 뿌린 30대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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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일 오전 8시35분 서울 관악경찰서 1층 로비로 전모(38·여)씨가 들어섰다.

관악서에서 난동, 4명 화상 입어

오른손에 손가방을 든 채였다. 전씨는 안내데스크 당직자에게 “사이버수사팀과 약속이 있다”고 말한 뒤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사이버수사팀 사무실에 들어온 전씨는 다짜고짜 손가방에서 과도를 꺼내 “왜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책상 등 집기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렸다. 경찰관 4명이 전씨를 제지해 복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때 전씨가 손가방에서 플라스틱 보온병을 꺼내 뚜껑을 연 뒤 순식간에 사이버수사팀 박모(44) 경사에게 황산을 뿌렸다. 박 경사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굴과 목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다른 경찰 3명도 부분 화상을 입었다. 전씨는 현장에서 긴급체포됐다.

전씨와 박 경사는 ‘아는 사이’였다. 지난 2013년 9월 옛 남자친구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할 당시 경찰서를 찾은 전씨에게 박 경사가 상담을 해줬기 때문이다. 고소건의 결론은 증거불충분 각하. 하지만 박 경사는 전씨의 하소연을 친절하게 들어줬고 전씨도 그 사건엔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

황산 테러의 발단은 지난 2월 초 서울 관악구의 원룸 1층에 있는 두 가구의 유리창을 누군가가 깨뜨린 사건이었다. 폐쇄회로TV(CCTV) 분석을 통해 지목된 용의자는 건물 2층에 거주하는 전씨였다. 전씨는 경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하며 안면이 있는 박 경사에게 여러 차례 연락해 “나에 대해 (경찰에) 잘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 경사는 “담당이 아니다”며 거절했다. 전씨는 경찰 조사에서 “박 경사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연락을 피해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특수공무방해치상 혐의로 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올 2월 유리창을 깨뜨린 혐의(재물손괴)도 조사한다. 경찰 관계자는 “황산 구입 경로를 조사 중”이라며 “전씨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프로파일러 조사 결과 피해망상 증세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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