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미 각료 첫 히로시마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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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의 현직 국무장관이 오는 1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는다. 캐롤라인 케네디 등 주일 미국대사들이 히로시마 위령식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미 각료의 원폭 피해지 방문은 종전 71년 만에 최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26~27일 미에(三重)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오바마 대통령도 히로시마로 초청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전쟁 가해국 대신 원폭 피해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10~11일 G7 외교장관 회의 참석
“일, 원폭 피해국 이미지 부각 의도”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0~11일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다른 외교장관들과 단체로 원폭위령비에 헌화하고 원폭자료관도 둘러볼 예정이다. 미국과 함께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 프랑스 외교장관의 히로시마 방문 역시 처음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2일 기자회견에서 “핵무기 보유국과 비(非)보유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G7의 틀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며 핵 군축·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히로시마 선언’ 계획을 밝혔다. 히로시마 출신인 기시다 외상은 G7 외교장관의 원폭자료관 방문을 각국에 적극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31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때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대통령으로서 일본을 방문하는 마지막 기회다. 미·일 관계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한 데 기대를 걸고 있다. 오바마가 취임 첫해인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며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만큼 사실상의 집권 마지막 해인 올해 히로시마를 방문해주길 바라고 있다.

문제는 미국 내 여론이다. 각종 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60%가량은 “원폭 투하가 전쟁 종결을 앞당기고 많은 미국 장병의 목숨을 구했다”고 답했다. 재향군인회를 중심으로 반발 가능성도 높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일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여부는 케리 국무장관의 방문 반응을 보고 최종 결정할 것”이란 백악관 고위 관리의 말을 보도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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