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북 압박 강도 높여도 대화의 문은 열어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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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금은 북한에 매를 들어야 할 때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매를 들기로 했으면 확실하게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성(耐性)만 커진다. 지금까지 대북제재가 효과를 못 본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워싱턴에 간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31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만나 북한에 대한 3국의 강력한 제재 의지를 과시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 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2270호)이 채택된 이후 처음으로 한·미·일 정상이 모여 대북 압박 공조를 강화하고,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제 중요한 것은 결의를 철저히 이행해 핵 포기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걸 북한이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지금은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 셈법을 바꾸도록 할 때라는 데 3국 정상의 인식이 일치한 것이다. 북한의 추가 도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본다.

한·미·일 정상은 3국 간 안보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이 추진해온 한·미·일 3각 안보동맹이 한·일 간 위안부 협상 타결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계기로 본격화하는 셈이다. 그동안 미뤄져 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조만간 체결될 것이란 얘기가 벌써 도쿄 쪽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과도하게 중국을 자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북제재의 실효성은 중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중국도 말로는 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을 다짐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어제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각각 만나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이행을 직접 약속했다. 하지만 벌써 북·중 국경 무역에 구멍이 뚫렸다는 외신 보도도 있는 만큼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시 주석은 대북제제 동참 의지를 밝히면서도 6자회담을 통한 대화 재개 필요성을 강조, 제재 일변도인 한·미·일과 시각차를 드러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유도하는 수단으로 사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배치 문제를 최대한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한은 대북 압박에 맞서 어제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공격도 하고 있다. 각종 선전매체를 동원해 핵무력과 경제 발전의 병진노선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전파하고 있다. 매를 들 때는 들어야 하지만 매만으로 나쁜 버릇을 고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매를 들 때가 맞지만 시 주석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만큼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