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통신자료, 마구잡이로 들여다봐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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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경찰과 국가정보원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통신자료가 정해진 용도로만 활용되고 외부에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절차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고 말했다. 시중에 확산되고 있는 논란을 의식해 보완 방안을 마련해보겠다는 얘기다. 최근 국회의원과 노동단체 실무자, 기자, 대학생 등 일반 시민들까지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통신 사찰(査察)’이란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83조는 수사·정보기관이 재판, 수사, 형 집행, 국가안보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해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등 인적 사항을 사업자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관들은 이 조항을 활용해 법원 영장 없이 인적 사항 일체를 제공받아왔다. 2014년의 경우 통신사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검찰 426만 건, 경찰 837만 건, 국정원 11만 건의 통신자료를 제공했다(미래창조과학부 집계). 1년간 1270만 개 넘는 전화번호 보유자의 인적 사항이 수사·정보기관에 제공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공요청서에 요청사유 및 연관성 등만 간략하게 적으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해당자들의 인적 사항 일체가 넘어간다는 데 있다. 당사자는 통신사에 제공 내역을 요청해야 알 수 있다. “인적 사항쯤이야…”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인적 사항은 프라이버시의 핵심이다. 특히 주민번호 하나만 있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추가적인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생활의 울타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표현의 자유도 위협받기 마련이다.

분명한 건 인권이 수사 편의에 희생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국정원과 검찰 모두 시민이 납득할 수 있게끔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통신자료 조회는 원칙적으로 법원 허가를 거치도록 법을 고치고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사후 통지 절차라도 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