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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알파고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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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2016년 3월 16일 30면>
알파고 쇼크를 축복으로 바꾸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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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이 1대 4로 마무리됐다. 어제 벌어진 최종국에서 흑을 잡은 이세돌 9단이 여러 차례 판을 흔들었지만 알파고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번 대결은 “기계가 바둑에서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 정반대로 끝났다.

다섯 차례 대국에서 알파고가 던진 충격은 크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의 장기인 계산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바둑 팬과 국민들이 진짜 놀란 건 사람처럼 생각하고 두는 듯했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유불리를 판단하며 응수타진과 손빼기를 연발했다. 부분 전투에선 강해도 전체 형세를 바라보는 능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리할 땐 안전 운행을 하고, 불리할 땐 승부수를 던졌다. 대세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두터움을 중시하는 모습은 전성기의 이창호와 이세돌을 합쳐놓은 듯했다. ‘인공지능의 도전’으로 시작됐던 대결이 ‘이세돌의 도전’으로 바뀐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제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바둑은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복잡하다. 알파고의 승리는 정해진 규칙 내에서 움직이는 게임의 영역에서 AI가 인간을 넘어섰거나 곧 그럴 것이라는 의미다. 다른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을 보완하고 대신할 날도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다. 알파고 쇼크가 바둑팬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의 대표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어디에서도 쓸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개별 상품에서 시스템으로의 통합이라는 흐름이 산업과 일상을 바꿀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은 두루 뒤떨어져 있다. 주력산업을 중공업에 의지하고 있고, 정보기술(IT) 분야의 선두주자인 반도체산업도 D램 같은 메모리 반도체와 하드웨어 중심이다.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잠재력을 경시하는 풍토가 정부와 기업,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게임산업을 유해산업으로 간주하며 편견과 규제에 묶어 두고 있는 게 한 예다. IT 연구와 제품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사업과 하드웨어에 치우쳐 있다. 인식과 정책 모두 미래가 아닌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면에서 알파고 쇼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산업과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중장기 목표를 세워 관련 제도와 규제를 정비하고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여기엔 AI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인문학적 토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자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로운 세대에 AI시대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세돌 9단의 분투는 끝났지만 한국엔 알파고가 내준 숙제가 잔뜩 쌓였다.

한겨레<2016년 3월 16일 31면>
‘알파고 이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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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다섯 차례 대국이 모두 끝났다. 지난 일주일 사이 우리들은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쏙 빼닮은 알파고의 위력에 충격을 금치 못했고, 동시에 포기를 모르는 투혼으로 알파고를 한 차례 무릎 꿇린 인간의 의지에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지켜본 인공지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잉 열풍도, 과잉 불안도 모두 적절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위협적이었으되 아직은 한계 또한 분명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기계학습(머신러닝) 방식을 따르다 보니 스스로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바둑과 같은 두뇌게임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의료 등 일상생활 분야에 곧장 적용됐더라면 치명적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앞길이 아직은 꽤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우리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 아프지만 값진 시간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 분야란 첨단 과학기술이 한데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사리 넘보기도, 따라가기도 힘들다. 떠들썩한 세기의 대결이 결국 구글의 잔치로 끝나버린 건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 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해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 온 ‘추격자’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적인 인공지능 육성 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움직임도 있다. 미래 인류 문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사업을 번갯불에 콩 볶듯 밀어붙이는 태도도 문제이거니와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볼썽사납다. 창조경제 한답시고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사실상 기업에 할당하는 구닥다리 경제의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논리 vs 논리
산업·사회·문화 아우른 계획 필요 … 기초 다지는 창의적 시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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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지난 15일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을 모두 끝낸 뒤 미소를 짓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일에서 15일까지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바둑 대회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바둑은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통찰과 직관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임이다. 이런 ‘인간적’인 능력이 필요한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긴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뒤지고 있다는 불안감, 앞으로 기계에 내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널리 퍼졌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여야가 모두 비례대표 앞 순위에 인공지능의 기초인 크라우딩과 수학 분야의 전문가들을 배치할 정도였다.

한겨레와 중앙은 모두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산업 육성 정책이 단기적이고 성과 위주임을 비판한다. 중앙은 “IT 연구와 제품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사업과 하드웨어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한겨레 또한, “떠들썩한 세기의 대결이 결국 구글의 잔치로 끝나버린 건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 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고 꼬집는다.

하지만 인공지능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는 두 사설의 입장이 엇갈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적인 인공지능 육성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예산 300억원을 들여 인공지능을 국가 차원에서 개발하는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는 이렇듯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볼썽사납다”고 강하게 질책한다.

알파고를 만든 기술 회사인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는 대규모 국책연구소도, 대자본이 투자했던 기업도 아니었다. 공학박사들이 만든 조그마한 스타트업 회사였을 뿐이다. 허사비스 대표는 컴퓨터공학과 인지신경과학, 뇌과학을 전공한 ‘융합형 인재’다. 이런 딥마인드를 구글은 기술력과 창의성만 보고 무려 6억2000만 달러를 들여 인수했다.

이 모두는 일사불란한 계획과 대규모 투자를 앞세우는 산업경제의 패러다임으로는 이루기 힘든 결과다. 한겨레가 “해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 온 추격자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한겨레는 우리의 뒤처진 인공지능 분야의 경쟁력을 기술격차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태도를 경계한다. “인공지능 분야란 첨단 과학기술이 한데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그 때문에 한겨레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사리 넘보기도, 따라가기도 힘들다”는 점을 주지시킨다. 한겨레의 주장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산업시대 패러다임에 기초한 ‘빠른 추격자(fast-follow)’ 모델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면에 중앙의 입장은 현실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인공지능 같은 첨단 분야는 선발주자가 플랫폼을 만들고 생태계를 꾸려버리면 후발주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사라져버린다. 그 때문에 중앙은 “산업과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중앙이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에서 거대 국책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중장기 목표를 세워 관련 제도와 규제를 정비하고 연구개발과 투자를 촉진해야” 하며, “AI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 인문학적 토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는 과학의 발전과 시장의 변화를 잘 파악해 필요한 기술과 인력이 원활하게 공급하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중앙의 입장은 빅 데이터,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려면 이에 걸맞은 국가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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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다보스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부터는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들을 본격적으로 대체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본질을 성찰하며 체계적이고도 철저한 대비를 해나가야 할 때다.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이 점을 잘 일깨워준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