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청중이 대화·문답식으로 분위기 잡아|"내용 없는 열변"이 안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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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총선유세가 중반에 접어든 가운데 전국의 유세장마다 운집한 청중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유세장 분위기를 이끄는 새로운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도시지역에서 두드러져 종래 후보자의 일방적인 정견수용에 그쳤던 유세장이 후보자와 유권자의 「대화의 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처럼 선거유세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은 자기표현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이 대거 유세장에 몰리는 현상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으로 이제 우리의 정치문화도 불가피하게 참여와 협상을 체질화 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총선유세에서 서울을 비롯한 도시지역 등 청중들은 여론과 빗나간 후보들의 발언에는 「야유」로 제지하면서 여론을 「대변」하는 발언에는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내 분위기를 후보자의 유세라기보다 유권자의 의사표현장으로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후보들은 웅변조의 연설기법을 문답식으로 바꾸어 호응을 얻는가 하면 연설내용을 현장에서 수정·보완하기도 한다.
가렴 3일 서울양정고교에서 있었던 종로-중구 유세장에서 민정당의 이종찬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전원 당선된다해도 야당과 비교해 55대 45로 크게 우세하지 않다』고 말하자 청중들은 『우!』하는 야유로 발언을 제지했다.
4일 서울청구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종로-중구유세에서 신민부 이민우 후보가 『김일성과도 대화를 하겠다면서 미해금 인사와 대화를 기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다그쳤을 때는 많은 청중이 박수를 보냈다.
4일하오 서울원촌국교운동장에서 있은 강남구유세의 경우 민정당의 이태섭 후보가 『4년 동안 관내에 교통신호등 설치, 도로포장, 고속도로변 방음벽 설치등 업적을 쌓았다』고 내세웠다가 청중들로부터 『그게 왜 당신업적이야. 우리 세금으로 한 것이지』하고 발언은 제지당하기도 했다.
같은 날 보광국민학교에서 있은 용산-마포구유세에서 국민당의 고명관 후보는 『대형사건이 속출하는데도 11대 국회는 국정조사권 한번 발동하지 못했다』 『왜 그런지 압니까』하고 청중의 호응을 유도, 『자신이 없어서요』라는 청중들의 응답에 『덕분에 원고 한장이 그냥 넘어갔다』고 하는 등 의식적으로 문답식 화법을 구사하는 양상도 보였다.
이처럼 「적극적 반응」을 보이는 청중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층으로 이들은 연단주변에 진은 친 후보들의 박수부대 바깥에 자리잡고는 후보들의 연설을 사실상 리드하고 있다.
이들 「적극적인 젊은 청중」들 때문에 박수부대의 조직적인 분위기 유도바람도 견제 당해 대구·광주 등 연설회장의 경우 동원된 박수부대조차 기가 죽어 박수를 치지 못했을 정도.
이번 선거에서 이들 젊은 유권자들은 선체유권자 2천3백93만명의 과반수를 넘는 58%인 1천3백61만명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들이 이처럼 대거 유세장에 몰려나와 정치적 관심을 표면화하고 있는 현상은 우리 정치문화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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