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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준법서약제 폐지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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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법무부가 그제 정책위원회를 열고 공안사범 가석방의 전제 요건이던 준법서약서 제도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공안.시국사범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에서 시대 흐름을 반영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이 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그동안의 소모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도 환영할 만하다.

준법서약서 제도는 정부가 1998년 '사상전향제'를 폐지하면서 도입했다. 이후 진보적 인사들은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해온 반면 보수적 인사들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맞서 왔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에 대해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재독 송두율 교수는 이 서약서에 발목이 잡혀 몇 차례의 방한 시도가 무산됐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 제도는 이미 오래 전에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99년 3.1절 특사를 단행하면서 준법서약을 거부한 미전향 장기수 17명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도 지난 3월 법무부가 폐지 검토 방침을 밝힌 데 이어 4월 시국.공안사범 1천4백여명을 사면하면서 이를 받지 않았다. 더구나 재야 법조계에선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 왔다. 종이쪽지에 불과한 서약서 서명 여부로만 출소 후의 준법 의지를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다.

시대의 흐름으로도 이제는 사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속박해서는 안된다. 폭력 등 불법이 수반될 때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가석방 심사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가석방 심사를 강화해 일부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심층 면접제 등을 통해 준법 의지를 더욱 꼼꼼하게 따져 볼 수도 있다. 아울러 법집행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사면권이 남발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