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 보다 묵직한 희망의 역투…정현욱 위암 이기고 627일만 등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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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을 이기고 627만에 등판 LG의 정현욱 투수 [사진 LG트윈스]

정현욱(38·LG 트윈스)의 표정은 잔뜩 상기돼있었다. 프로야구 데뷔 20년차의 백전노장다운 기백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보다 20㎏이나 빠져 홀쭉해진 모습도 야구팬들에게는 익숙치 않았다. 그 자신도 나중에 "신인처럼 떨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역투를 보여줬다.

정현욱은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범경기 두산과의 경기에서 4-2로 앞선 6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등판해 ⅔이닝 무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긴 출전시간도, 그닥 대단한 기록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로 대단하고 위대한 역투였다.

그가 마운드에 선 것은 627일만. 2014년 7월8일 두산전 이후 처음이다. 이날 경기 후 오른쪽 팔꿈지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며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14년말 암(癌)이 찾아왔다. 위암 진단을 받은 그는 굳건한 마음을 먹었다.

정현욱은 구단에 "병명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외로움 싸움
을 묵묵히 견뎌냈다. 긴 재활 기간을 거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됐다. 현재는 6개월에 한번씩 암의 재발을 추적 관찰하고 있다.

정현욱은 경기 후 "은퇴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을 오히려 비우는 계기가 됐다"면서 "모든 일에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됐고, 세상에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말했다.

올해 그가 얼마나 많은 경기에 서게 될지는 미지수다. 아직 컨디션을 끌어올리려면 갈길이 멀다. 그러나 몇 경기에 나서건, 어떤 성적을 거두건 중요치 않아 보인다. 그 어떤 강속구 보다도 그가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묵직하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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