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1)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잡지 『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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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그는 1922년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였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책머리에 이렇게 써서 그가 어떻게 우리 불쌍한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동정해 이 책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만들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선물』은 세계각국의 유명한 동화를 골라 모은 것으로 서투른 번역냄새가 나지 않게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써서 우리나라 동화책같이 만들었다. 이 책이 나오자 어린이들은 서로 다투어 사보았고 지금도 끊임없이 잘 팔리는 고전이 되었다. 이것은 그가 동양대학의 학생으로 있을 때 준비하였던 것으로 23세때 지은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천도교회의 방하나를 얻어 「어린이」 잡지사를 만들고 1923년 3월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소년 소녀를 위한 잡지로 1908년에 육당 최남선이 신문관에서 발행한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잡지는 이름만 「소년」이지 내용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계몽잡지였다. 원래 당시 우리나라 말에 「소년」이란 말은 「노년」에 대한 말이어서 젊은이란 뜻이 된다. 그래서 잡지내용이 요새 말하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을 상대로 한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계몽잡지였다. 그러므로 순수한 어린이를 위한 잡지는 방정환이 만든 『어린이』가 처음이라고 할수 있다. 왜 그런고 하니 『어린이』잡지는 정말 코흘리는 어린이들을 상대로 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는 동시에 그해 5월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어린이들을 이끌고 서울거리를 행진해 크게 어린이들의 위세를 떨치게 하였다. 중절모자를 쓴 뚱뚱한 방정환이 앞장을 서서 어린이들의 기나긴 행렬을 이끌고 천도교회당에서 종로로 나와 큰길거리를 행진하던 광경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존중하라는 시위운동이 되는 동시에 어린이들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요샛말로 사기앙양의 퍼레이드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방정환의 이 「어린이날」 운동은 확실히 민족의 갱생을 촉진시킨 대단히 의미깊은 운동이었다.
1924년에는 서울에서 전국소년지도자대회를 열었고 다시 1925년에는 서울안에 있는 40여단체들이 모여 소년운동협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즈음부터 좌우의 분열이 생겨 소파는 소년운동의 일선에서 물러나 『어린이』잡지와 동화대회를 여는데만 힘을 쏟고, 겸해 많은 잡지를 발간하는 개벽사일에 몰두하게 되어 틈이 없었다.
그는 잡지를 발간하는 저널리즘에도 유능한 재질을 보여 『별건곤』 『제일선』 『농민』 『신여성』 등을 훌륭히 주재하여 나갔다.
그러나 고혈압증세를 나타내어 고생하다 1931년 7월 33세의 아까운 나이로 별세하였는데 임종때에 옆의 사람들에게 『새까만 말이 끄는 까만 마차가 나를 데리러 와 나는 간다』고 하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참으로 동화작가다운 순결무구한 죽음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아뭏든 세계에서 유례없는 독창적인 어린이운동을 일으켜 어린애를 「어린이」라고 인격있는 이름으로 부르게 하고 따라서 어린이에게 존대어를 쓰게 하고, 5월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어린이헌장」을 만드는 등 불후의 업적을 남기고 그는 갔다. <조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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