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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승리 확률’설계 … 인간 뇌는 훨씬 고차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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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15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승부를 가른 건 ‘학습’이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도전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세돌 9단의 5대 0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 승리였다. 10의 180제곱에 이른다는 무궁한 경우의 수도, 인간의 창의성도 1000여 개의 병렬컴퓨터와 딥마인드에 모두 정복된 것일까? 인간이 진 것은 수퍼컴퓨터의 놀라운 연산 능력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인공지능의 무한한 학습 능력이었다. 컴퓨터는 ‘명령-연산-결과 제출’이라는 단순한 작업을 아주 빠르게 수행할 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 단순한 과정을 토대로 ‘스스로’ 학습을 하며 발전했다. 게다가 인간은 꿈도 꾸지 못한 놀라운 속도로 말이다.


학습을 사전에서 보면 이렇다. ‘경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의 변화나 잠재력의 변화 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학습은 생명체의 고유한 특징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학습의 결정체였다. 정글에서 홀로 자란 아이가 이른바 ‘늑대 소년’이 된 것은 학습을 통해 뇌가, 그중에서도 대뇌피질이 충분히 성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습의 원리와 기억의 메커니즘은 오래전부터 뇌신경 과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였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와 그 10배인 1조 개의 교세포(별 모양의 세포)로 둘러싸여 있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보다 먼, 총 연장 640㎞나 되는 뇌혈관망이 뇌에 있는 신경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는 각각 수많은 가지를 뻗어 이웃 신경세포와 평균 1000여 회나 맞닿아 있다. 이것을 연접(시냅스)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바로 학습과 기억이 일어난다.


기능적으로는 ‘가소성’이라고 부르는 성질이 학습과 기억의 열쇠다. 가소성은 신경세포의 연접(시냅스)이 새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강하게 얽혔다가 약해지는 현상이다. 영어 단어를 쉽게 배우는 사람은 신경세포들이 강하게 얽힌 것이고 자꾸 잊는 사람은 신경세포들이 금방 풀려버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역동적인 네트워크가 겨우 1.4㎏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 뇌 속에 자리하며 인간다움을 만들어낸다. 알파고의 학습 강화 능력은 오직 ‘하나의 의사결정’, 즉 ‘승리 확률을 최대화할 수 있는 다음 수’만을 위해 설계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고도로 복잡한 입력을 받아 구체적이고 때로는 추상적인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인간 뇌의 고차원적 집행 기능을 ‘고위 뇌 기능’이라 부른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는 학습과 기억, 추론과 판단, 의사결정, 감성과 인지 등이 모두 고위 뇌 기능의 결과다. 이것들이 이뤄지는 부위가 뇌에서도 바로 피질이라 불리는 가장 바깥 층이다.


이세돌 9단은 “집중력에서 알파고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알파고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 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파고는 바둑 실력은 더 좋아지겠지만 상대성이론을 고민하거나 피카소의 그림에 감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다르다. 잡생각을 하고, 감정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진 신경망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만 가지 생각과 기억이 병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인간의 뇌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러한 복잡성에서 나왔다.

1 광학현미경을 이용해 만든 투명 뇌지도. 신경세포 하나 하나가 보인다. 2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뇌 속 신경세포의 축삭돌기와 시냅스 등 미세 구조물. [사진 MIT·한국뇌연구원]

인간의 뇌가 가진 복잡한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서(구조적 연결) 신호를 주고받는가(기능적 연결)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2013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브레인 이니셔티브’라는 10년 계획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에서 신경세포의 전체 연결망을 해독하고자 하는 거대 뇌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간 지놈 지도를 만든 것처럼 인간 뇌지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세밀하게 지도를 그리느냐에 따라 마크로 크기(센티미터~밀리미터), 메조 크기(밀리미터~마이크로미터), 나노 크기(나노미터)의 인간 뇌지도라고 부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해상도라고 말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노미터 크기의 인간 뇌지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시냅스의 크기가 겨우 수백 나노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있는 한국뇌연구원에 오면 고가의 ‘연속 블록면 주사전자현미경’이 있다. 바로 나노 해상도의 뇌지도를 만들기 위한 장치다.


나노미터 해상도의 신경망 연결지도는 꼬마선충(C. elegans)이라는 작은 지렁이를 닮은 생물에서 30년 전에 최초로 작성되었다. 신경세포가 302개에 불과해 그나마 가능했다. 최근에서야 포유류에서 생쥐의 망막신경세포와 대뇌의 일부 영역만을 대상으로 뇌지도가 만들어졌다.


사정이 이러니 전체 뇌지도를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대뇌피질의 특정 영역만이라도 뇌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면 각 신경망의 기능적 연결을 규명하는 데 큰 전기가 될 것이다. 또 뇌지도는 뇌의 이해에 기반한 인공지능 및 로봇 개발에도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매일 알파고처럼 하나의 생각만 하는 인공지능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뇌 연구 중 ‘뇌공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손발을 못 쓰게 된 환자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교하게 로봇 팔과 다리를 조종하거나, 뇌졸중 또는 치매로 손상된 뇌신경 회로를 복구시켜 인지 기능을 회복하는 기술이다. 이제 상상의 영역까지 들어가 보자. 뇌와 신경 임플란트,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좀 더 차원 높은 뇌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영화 ‘써로게이트’나 ‘아바타’처럼 본체(인간의 몸)는 어딘가에 누워 있고 내 정신만 담은 로봇이나 아바타가 세상을 돌아다니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육체 없이 인간의 뇌를 디지털 공간 또는 네트워크에 업로드해 옮기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전망을 할 때마다 언급되는 구글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뇌를 능가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가 되면 사람은 자신의 뇌를 인공지능 시스템에 업로드해야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커즈와일의 주장이다. 뉴욕시립대 물리학과의 미치오 가쿠 교수도 ?마음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뇌지도의 한 형태인 ‘인간 커넥톰’을 통해 인간의 의식(실제로는 신경세포와 신경망)을 디지털 세계에 그대로 옮겨 담아 영생의 길에 이를 가능성을 논하기도 한다. 모두 ‘포스트 휴먼’ ‘트랜스 휴먼’을 예측하는 이야기다.


알파고 쇼크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를 놓고 현실과 공상의 영역에서 다양한 토론을 낳고 있다. 정부도 인공지능 개발에 1조원을 투자한다고 나섰다. 인류의 마지막 프런티어인 뇌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뇌 연구는 미래 인공지능의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인간이 살아남고 더 번성하는 방법 역시 뇌 연구가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임현호 한국뇌연구원 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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