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파도 타고 대선 리그에 新 3인방 뜰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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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4 면

불과 24일 앞으로 다가온 4·13 총선전에 큰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다. 총선은 각 당의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총선 이후를 바라보는 잠재 대선 후보들에게도 운명의 무대다.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정치적 위기의 입구가 될 수도 있다. 지도력을 발휘해 총선이란 격랑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 현재 거센 파도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출발하는 이도 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는 이도 있다. 총선 정국을 헤쳐 나가는 여야 대권주자들의 중간 성적표를 중앙SUNDAY가 들여다봤다.


‘30시간의 남자’ ‘무(기력한)대(표)’ 공천 정국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얻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다수의 정치 전문가는 공천 과정에서 가장 점수를 잃은 잠룡으로 그를 지목한다.


정치력과 뚝심 등 ‘김무성 정치’의 장점 대신 ‘디테일 부족’ 등 단점만 연일 부각되고 있다. ‘30시간의 남자’란 김 대표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축출, 살생부 파문 등 특정 사안을 두고 친박계와 각을 세우다가도 30시간 안에 뒤로 물러섰다는 의미다. “전략공천을 하려면 날 죽이고 하라”던 결기는 사라졌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전략공천 드라이브를 막지 못했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는 “김 대표는 공감을 이끌어내고 타협하는 정치를 할 줄 안다”면서 이런 성향이 친박계의 ‘벼랑 끝 전술’에는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천위와 최고위원의 다수를 친박계가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는 등 약한 디테일이 고립을 자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한구 위원장의 독주에 줄곧 침묵을 지키다 김학용·김성태·이군현·박민식·권성동 의원 등 측근들이 살아남은 뒤에야 공천위의 결정을 문제 삼은 데 대해선 ‘자신의 잇속만 챙긴 것 아니냐’는 말들도 나온다. 정치 분석가 중엔 “이전엔 여권 내 독보적인 대권주자였는데 총선 후엔 그저 서너 손가락 안에 드는 후보 중 한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정치 싱크탱크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는 혹평도 나온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대권주자로 부상할 기회를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종로의 터줏대감인 박진 전 의원과 경합하며 박 전 의원이 주장한 일반 국민 대 당원 7대 3 경선 룰을 수용하고도 승리했다. 오 전 시장이 20대 국회에 입성한다면 2011년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 승부수를 걸었다가 실패하고 정계를 떠난 후 5년 만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새누리당 내 전략통 의원은 “오 전 시장은 친박-비박 싸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데다 양쪽 모두와 사이가 나쁘지 않다. 비박계의 대표주자도 친박계의 대표주자도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 전 시장은 굳이 종로에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 청와대가 종로 출마를 강하게 권했다. ‘정치 1번지’에서 살아 돌아오면 당을 대표하는 카드로 떠오르기 때문”이란 이야기도 새누리당 주변에 퍼져 있다. 물론 이 모든 가설은 오 전 시장이 종로구 본선에서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정세균 의원에게 승리하는 걸 전제하고서다. 현재 여론조사들을 보면 오 전 시장이 약간 앞서 있으나 ‘바람’이 야권 쪽으로 불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유승민 의원의 득실 계산은 다소 복잡하다. 겉으론 누가 봐도 명백한 피해자다. 그와 가깝다는 의원 대부분이 컷오프되며 ‘정치적 시베리아’에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 인지도와 주목도는 정치적 자산이 됐다. 리얼미터의 차기 여권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선 김무성 대표까지 위협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유 의원이 이번에 당선된다면 대선주자의 지위가 확실해진다. 한국에선 대통령과 갈등·대립하는 사람이 큰다”고 말했다. 임동욱 교수는 “유 의원이 대구 노모를 찾아간 모습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거제도로 부친을 찾아가던 모습을 연상케 했다”고 했다.


반면 윤태곤 실장은 마이너스 요인도 지적했다. “인지도는 확실히 상승했지만 7월 전당대회를 치르면 ‘90% 친박 지도부’가 구성될 가능성이 큰 데 유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더라도 내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당 지도부가 복당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권에선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대표적 수혜자로 꼽힌다. 매를 미리 맞고 당의 전권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넘긴 뒤에는 손해 본 것이 별로 없다. 더민주 공천에서 친노계 좌장 격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문희상·유인태·신계륜·노영민 의원 등 친노 중진은 대거 탈락했다. 하지만 김태년·전해철·홍영표·윤호중·박남춘 의원 등 친문재인계들은 살아남았다. 친문재인 성향 원외 인사인 김경수(김해을)·최인호(부산 사하갑)·정태호(서울 관악을) 후보와 양향자(광주 서을)·김병관(성남 분당갑)·조응천(남양주갑) 후보 등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도 공천을 많이 받았다. ‘더민주가 친노당에서 친문당으로 리모델링했다’는 얘기가 당 안팎에 파다하다.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접은 뒤 여론조사 지지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감 유지가 어렵다는 점과 과연 부산 지역에서 선전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에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국면이다. 수족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박 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임종석(서울 은평을) 전 정무부시장을 비롯해 민병덕(안양 동안갑) 변호사, 권오중(서울 서대문을) 전 시장 비서실장, 강희용(서울 동작을) 전 서울시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했다. 서울 노원갑 경선을 준비 중이던 오성규 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경선 포기를 선언했고 서울 도봉을의 천준호 전 시장 비서실장은 오기형 변호사가 전략공천되면서 탈락했다. 서울 성북을의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만이 살아남았다. 총선을 통해 당내 입지를 단단히 하려던 박 시장의 구상도 헝클어졌다. 한 당내 인사는 “뼈대를 만들어 놓고 대선까지 살을 붙여나가야 하는데 뼈대를 세우기도 어렵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컨설팅 업체 ‘민’의 박성민 대표는 “당내에 조직적 기반을 갖추기는 어렵게 됐지만 어차피 서울시장 신분이라 대선에 출마한다면 당의 부름을 받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에 유불리를 속단하긴 이르다”고 했다. 더민주 내에선 “공천에 불만을 가진 박 시장이 김종인 대표에게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둘 사이가 험악해졌다”는 얘기도 돈다. 김 대표가 단순한 ‘바지 사장’이 아니라 총선 뒤에도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만큼 박 시장에겐 대권가도의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야권통합론에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의원이 동조하면서 궁지에 몰렸지만 반대론을 굽히지 않으며 결국 두 사람의 백기투항을 받아냈다. 정호준·부좌현 의원의 입당으로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도 성공했다. 20대 총선에서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리란 게 중론이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출마한 서울 노원병 지역구 선거에서 수성에 성공할지, 수도권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의미 있는 성적표를 받아낼지에 따라 자칫 정치적 위기로 몰릴 수 있다. 또 집중적으로 공을 들여온 호남에서 더민주에 밀릴 경우에도 공천 책임론 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잠재 후보군 중에서 총선 결과에 따라 가장 부침(浮沈)의 폭이 클 것으로 보인다.


대구 수성갑에서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김부겸 전 의원의 경우 총선 승리가 곧 대권행 열차의 승차권이다. 이 지역은 한때 20%포인트 내외로 김부겸 전 의원이 앞섰으나 국민일보·CBS가 의뢰해 리얼미터가 지난 8~10일 조사한 결과는 41.9%(김문수) 대 43.8%(김부겸),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윤태곤 실장은 “전국, 특히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욕을 먹을수록 대구·경북의 여당 지지자들은 단결하게 돼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수성구 방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종인 대표도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잠룡 대열에 끼는 분위기다. 좌우를 넘나든 경륜에 이번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과단성이 그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16일 토론회에서 “킹메이커는 더 이상 안 한다”며 대권 도전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현재의 대권주자들을 일제시대 때 구마적·신마적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1930년대 종로의 이권을 장악했던 ‘구마적’ 고희경에게 ‘신마적’ 엄동욱이 도전하던 상황이 현재 김무성·문재인·안철수?박원순에 유승민·오세훈·김부겸이 도전하는 상황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구마적과 신마적을 모두 꺾고 종로를 평정한 김두한이 등장할지도 관심거리다.


측근인 이남재 전 대표비서실 부실장과 김유정 전 의원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겐 아쉬운 소식이 많았다. 반면 박수현·김윤덕 의원과 원외 측근들이 대부분 공천을 받은 안희정 충남지사 측의 표정은 밝다. ‘링 밖의 최강자’로 불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선 “총선이 과열 양상을 띠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동욱 교수는 “반 총장이 대권에 뜻이 있다면 총선이 끝나자마자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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