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술 = 싸구려’ 48년 묵은 주세가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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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의 전통주 공방인 ‘삼해소주가’. 12지간의 마지막 날인 ‘돼지날(해일·亥日)’을 택해 석 달 동안 빚는다는 ‘삼해주(三亥酒)’를 담그는 곳이다. 4대째 삼해주의 대를 잇고 있는 김택상(66)씨는 “고급 전통주가 국내에선 설 자리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48년째 개정되지 않은 현행 주세 제도 때문이다.

좋은 재료 쓰면 ‘세금 폭탄’
소주값 묶어두려고 종가세
“전통주 진흥 위해 새로 설계를?

국내에서 주세는 알코올 도수가 아니라 가격에 따라 매기는 종가세를 적용한다. 서민 술로 자리 잡은 소주 값을 묶어두고 안정적인 세금 수입도 확보하기 위해 1968년 도입했다. 그런데 제조원가에 병과 포장재와 마케팅 비용까지 합친 금액에 세금을 매기다 보니 국산 술은 싸구려로 전락했다. 좋은 재료를 쓰거나 병을 고급화하면 출고가가 올라가 ‘세금 폭탄’을 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 종가세 체계는 국산보다 수입산에 유리한 구조다. 국산과 달리 수입산은 포장재와 마케팅 비용이 빠진 수입신고가격에 세금을 매긴다. 주류업체로선 국산술 개발보단 와인이나 맥주를 수입해 파는 게 훨씬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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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주류 수출액이 제자리걸음 하는 사이 주류 수입액은 30% 넘게 급증한 건 이 때문이다. 특히 일본산 청주 수입량은 2014년 3322t에서 지난해 3405t으로 늘었다. 쌀 1㎏에 4L 안팎 청주가 나온다. 매년 1000t에 달하는 일본 쌀을 국내 소비자가 사먹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국산=저급주, 수입산=고급주’라는 인식이 박혔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한때 주세 수입은 ‘조세 원유’라고 할 만큼 비중이 컸지만 이젠 국세의 1.5%에 불과하다”며 “주세 체계도 세수가 아니라 전통주 진흥 차원에서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상주·조현숙·이태경·하남현·김민상·이현택·장원석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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