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대사 연구의 1인자 우에다 마사아키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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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대사 연구 1인자 우에다 마사아키 교토대 명예교수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큰 틀에서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고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는데 평생을 바쳐온 ‘일본 고대사 연구의 1인자’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京都)대 명예교수가 13일 별세했다. 88세. 암 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이날 교토 자택에서 대동맥류 파열로 숨졌다.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 열도와 한반도, 중국 대륙의 인적 교류와 인권 문제를 연구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공생,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설파한 학자였다”고 추모했다.

 1927년 효고(兵庫)현에서 태어난 우에다 교수는 태평양전쟁 중 학도병으로 동원됐다. 도쿄 조선소에서 공습으로 친구를 잃은 뒤 ‘천황제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교토 한 신사의 신직(神職, 제사나 사무 등을 담당하는 신사 책임자)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 국학원대학에서 천황제의 성립 과정 등 고대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교토대 사학과에 진학했고 부락 차별을 둘러싼 사건을 접한 뒤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고인은 종교·신화 등 문화 연구에 중점을 두면서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일본 문화의 뿌리를 찾았다. 일본의 건국 신화가 한국 단군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지칭하던 ‘귀화인’이란 표현이 ‘일본 중심적’이라고 지적하고 ‘도래(渡來)인’이란 표현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 백제와 일본 왕실의 혈연을 연구하는 등 왜곡된 한·일 고대 교류사의 진실도 파헤쳤다.

 우에다 교수는 에도(江戶)시대 조선통신사와 일본 민중들이 함께 어울리며 우호관계를 쌓은 데 대해서도 주목했다. 조선통신사 연구를 통해 일본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인 ‘국제(國際)’뿐 아니라 민족과 민족이 교류하는 ‘민족제(民族際)’ 그리고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울리는 ‘민제(民際)’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50년 교토대를 졸업한 뒤 71년 교토대 교양부 교수가 됐다. 91~97년 오사카여자대 학장을 지냈다. 88년 재일교포 1세 정조문 씨가 일본 내 한국문화재를 수집해 교토에 세운 고려미술관 관장도 맡았다.

69~81년까지 ‘일본 속의 조선문화’ 계간지를 공동 발간했고 『고대 일본과 조선』(86년), 『고대 도교와 조선문화』(89년)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2009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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