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저성장·고령화 위기, 지금 한국에 필요한 네 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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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한국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경제 성장은 둔화됐고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고령화로 인해 사회복지 비용이 늘어나고 노동력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 사회가 겪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크게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는 ‘창업정신(entrepreneurship)’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큰 돈을 들여 공장을 짓고 저렴한 물건을 공급하는 걸론 경쟁력이 없다. 한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우수한 젊은이들이 창업에 간절함을 가져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말이다. 젊은이들이 취직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면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취직에 목을 메다 실패하면 절망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창업정신을 기르기 위해선 교육 시스템의 개혁이 절실하다. 특히 성적순으로 평가하는 현 시스템은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비싼 사교육비를 들여 성적만 올리는 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과 같다. 스테로이드의 약효가 떨어지면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능 점수가 절대적인 목표가 되면 곤란하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

두 번째는 여성 인력의 활용이다. 아직도 우수한 여성 인력이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금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은 중국보다도 낮다.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는 권위주의에 매몰되기 쉽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기 어렵다. 일본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이런 점에서다. 어려서부터 여성들에게도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여성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세 번째는 금융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과거 한국의 산업 비중이 수출 주도형의 제조업에만 집중돼 있어 상대적으로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낮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금융은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효과도 높은 산업이다. 금융 산업의 발전은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투자 자금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수 있는 힘도 제공할 수 있다.

금융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몇 가지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쳐야 할 건 대부분의 국내 금융기관 임원 임기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경제부처의 수장도 임기가 정해져 있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한국도 외국처럼 임기를 없애야 금융산업 발전의 디딤돌을 세울 수 있다. 더불어 학교에서도 금융 교육을 활성화해 학생들이 투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식 등에 투자하면 위험하다고 믿는 나라에서 금융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네 번째는 출산율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가 경쟁력은 인구 구조가 어떠한 지에 달려 있다.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이유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구 구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구 과열을 우려해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을 우대했다면, 앞으로는 아이를 많이 낳으면 국가적으로 혜택을 주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과 더불어 외국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도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보다는 훨씬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 등은 한국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경쟁력이다. 다만 과거와는 시대가 달라졌음을 인식해야 한다. 새로운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가장 위험한 건 현실에 안주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고의 유연성’을 갖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고통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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