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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할머니 평생 혼자 모은 12억원 장학금으로 쾌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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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억원이 입금된 박수년씨의 예금 계좌(위)와 이를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에 이체한 영수증.(아래 오른쪽)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80대 할머니가 장학금으로 12억원을 내놓았다.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박수년(85)씨는 7일 수성구청을 방문해 장학금 12억원을 기탁했다. 장학금은 대구은행 수성구청지점에서 박씨의 계좌에 있던 12억원을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했다. 박씨가 살고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을 제외한 전 재산을 기증한 것이다.

박씨는 “평생을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남편을 기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진훈 구청장이 장학금을 남편 이름으로 지급하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박씨도 동의했다.

박씨는 17세 때인 1948년 김만용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2년 뒤 6·25전쟁이 일어났고 남편은 28세의 나이로 입대했다. 그리고 2년 뒤 전사통지서가 박씨에게 날아왔다.

이후 박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농사를 짓고 양말공장에 다니며 60세가 될 때까지 일했다. 번 돈은 대부분 저축하고 거의 쓰지 않았다.

생활이 나아질수록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고 했다. 고민 끝에 박씨는 남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하나뿐인 아들도 장학금 기탁을 흔쾌히 동의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처음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지만 이 구청장의 권유에 따라 사연을 공개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은 끝내 거부했다.

이 구청장은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김만용ㆍ박수년 장학금’이란 이름으로 지급할 예정”이라며 “구립 범어도서관에 두 사람의 이름과 장학금 기증 내용을 적은 기념공간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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