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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소외된 러시아 ‘시간끌기 몽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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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이 ‘역사상 가장 센 유엔 제재’라고 평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복병을 만났다. 러시아다.

미·중 속전속결 결의안 복병 만나
중·러 “북한 민생 영향 줘선 안 돼”
통과도 전에 실효성 논란 제기 돼

당초 안보리는 이르면 27일 소집돼 결의안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결의안 채택 시점은 이번 주로 넘어가게 됐다. 유엔 제재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러시아의 몽니 때문이다. 러시아는 문건 검토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

 오준 유엔대사는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위한) 안보리 소집일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러시아는 단순히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얼마나 갈지 모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주 표트르 일리이체프 유엔 주재 러시아 부대사는 대북제재안 표결 시점에 대해 “다음주”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선 미국과 중국의 경솔함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러시아 변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속전속결’식 채택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결의안의 골격이 손상되거나 결의안 채택 시점이 길게 미뤄질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핵 야욕을 막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선 러시아도 이의가 없다. 이번 주초 채택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결의안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실효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400㎞의 북·중 국경 무역과 중국 기업이 북한에서 위탁 생산하는 의류 수출 등이 제재 대상에서 빠진 점 등을 거론하며 “새 제재안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전했다.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 사보타주’ 가능성이다. 북한과 육·해·공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러가 제재를 느슨하게 하면 제재안의 ‘경제 봉쇄’는 엄포에 그치게 된다. 이미 러시아에서 그런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27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 민간 분야에서 이뤄지는 북한과 외국 파트너들 간의 합법적 관계에 해를 끼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 역시 “북한의 민생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중·러가 이런 입장을 견지하면 대북제재의 그물코는 크게 넓어진다. 예컨대 이번 결의안의 ‘태풍의 눈’으로 꼽히는 광물 수출 금지의 경우 생계 목적의 석탄·철광석 수출은 허용된다고 돼 있다.

중·러가 ‘생계’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광물 수출 봉쇄의 파괴력은 유명무실해진다. 북·중 국경도시 단둥(丹東)에선 “이번에도 3~6개월이면 제재가 유야무야될 것”이란 얘기들이 돌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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