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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48m에 ‘완전 방수’ 도로 3.7㎞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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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6 면

차량이 다니는 해저터널은 우리나라에 한 곳뿐이다. 대우건설이 건설한 가덕해저터널이다. 부산시 가덕도와 중죽도를 연결한 이 터널은 6년 전인?2010년 우리나라 기술로 탄생했다.?첨단 기술력을 세계에 보여준 대표적인?사례다. 다섯 가지 세계 기록과 세 가지 기술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가덕해저터널에 사용한 박스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함체).

부산에 사는 김윤기(42)씨의 직장은 경남 거제도에 있다. 집과 거리가 멀어 직장 근처에서 방을 얻어야 했던 그가 5년 전부터는 집에서 다닌다.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로가 생기면서다. 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김씨의 생활은 한결 윤택해졌다. 그는 “3시간30분 넘게 걸렸던 두 도시가 이제는 40분 안에 연결되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부산~거제 40분대 동일 생활권 2010년 12월 거가대로 개통 후 지난해까지 4225만 대의 차량이 두 도시를 오갔다. 지난해 936만 대, 하루 평균 2만5600여 대의 차량이 통행했다. 거가대로는 바다를 건너 4개의 섬을 하나로 연결했다. 부산 가덕도~중죽도~저도~거제도 8.2㎞ 구간에 두 개의 대교와 한 개의 해저터널이 있다. 도로가 생기기 전 부산에서 거제도를 가려면 마산을 거쳐야 했지만 이 대로가 생기면서 140㎞의 거리가 60㎞로 확 줄었다. 직장인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 주고, 부산과 거제도를 하나의 관광지로 묶었다. 물류비용 절감 등 거가대로 건설로 발생하는 이익이 연간 4000억원이 넘는다.


 거가대로는 하마터면 건설되지 못할 뻔했다. 가덕도와 중죽도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없어서다. 진해만에 해군기지가 있다. 대교가 무너지면 진해만을 오가는 바닷길이 막혀 군사작전을 펼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바다 아래를 뚫어 터널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공사 기간이 너무 길어서다. 실제 수도권 지하철 5호선이 지나는 한강 하저터널은 846m를 뚫는 데 9년4개월이 걸렸다. 불가능할 법한 일을 대우건설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가덕해저터널 공사에 참여한 이 회사 해외토목사업팀 채봉철 부장은 “거센 파도와 조류가 심한 악조건에서 짧은 기간에 안전하고 정밀하게 해저터널을 만든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자부했다.


세계 최장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 도로(수심 48m), 세계에서 가장 긴 콘크리트 구조물(180m), 외해(外海) 연약지반에 건설한 세계 최초의 터널. 바로 가덕해저터널에 붙은 수식어들이다. 대우건설은 침매공법(沈埋工法)으로 바다에 터널을 만들었다. 이 공법은 박스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함체(函體)를 바닷속에서 연결하는 것이다. 부산시 가덕도와 중죽도를 잇는 3.7㎞ 구간을 이렇게 완성했다. 2004년 12월 공사를 시작한 지 6년 만이다. 가덕해저터널은 모두 18개의 함체를 붙여 만들었다. 함체 한 개의 길이는 180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기존까지 가장 길었던 덴마크와 스웨덴을 잇는 외래순터널의 함체보다 4.5m가 더 길다. 함체 한 개 무게는 5만t에 이른다. 함체에 들어간 철근과 콘크리트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함체에 사용한 철근으로 아파트 970가구(102m²기준), 콘크리트로 460가구를 지을 수 있다. 하나의 함체를 만들기 위해선 쉬지 않고 콘크리트를 부어 한 번에 만들어야 한다. 부식에 견딜 수 있도록 강도를 고르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35시간 동안 3600여 대의 레미콘 차량이 동원됐다. 가덕해저터널과 같은 침매터널은 세계에 140여 개 있다. 미국·일본·덴마크·네덜란드 등 선진국이 자체 기술력으로 시공했다. 하지만 대부분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만(灣) 주변 내해(內海)에 있다. 물결이 잔잔하고 수심도 10∼20m로 얕아 시공이 수월하다.


 가덕해저터널은 물결이 거센 외해(外海)에 있다. 여기에 갯벌이 있는 연약지반인 데다 48m 깊이에 터널을 건설하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세계의 건설 전문가들이 가덕해저터널을 주목하는 것은 난공사를 극복한 첨단 시공기술 때문이다. 거대한 구조물을 바다에서 이동시키고 가라앉히는 작업은 날씨가 좋아야 한다.


50년 축적 빅데이터로 기상 예측 대우건설은 기상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50년간 쌓아온 빅데이터를 활용해 예보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상 상황을 면밀히 관측하며 공사를 진행해 공사 중단에 따른 예산 낭비를 막았다.


 안전에도 각별히 신경썼다. 울퉁불퉁한 바닷속에 평평한 길을 낸 뒤 모래와 자갈을 깔고 시멘트 기둥을 깊이 박아 함체가 연약지반에서 흔들리거나 내려앉지 않도록 했다. 시멘트 기둥을 만드는 데 사용한 흙과 시멘트만 6만9000t에 달한다. 레미콘 차량 5000대 분량이다.


?함체를 깊은 바다에서 연결하려면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해외에서 장비를 구입하거나 빌리는 방법이 있지만 수천억원의 예산이 든다. 대우건설은 연구 끝에 해저터널을 만드는 데 필요한 특수장비를 자체 기술력으로 만들었다. 함체 위치 정밀 조절 장비(EPS)와 정밀 기초골재 포설 장비다. EPS에는 유압기가 달려 있는 ㄷ자형 구조물 두 개가 있다. 이 장비는 180m의 함체 양쪽 끝을 감싼 뒤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그러곤 바다 아래서 함체를 움직이며 다른 함체와 정확히 붙인다. 정밀 기초골재 포설 장비는 바닷속에 모래와 자갈을 깔고 함체를 앉힌 후 다시 자갈을 덮어 주는 기계다.


 함체 끝에 있는 고무판이 뒤틀리지 않고 다른 함체와 결합할 수 있도록 ‘압축공기를 이용한 접합 기술’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함체 연결 부위에 물이 샐 틈 없이 정확히 밀착시키는 기술이다. 대우건설은 이 기술과 두 가지 장비 등 세 가지 침매터널 건설 기술에대해 국제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최악 태풍·지진 대비 교통시스템 100년 이상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악의 태풍, 지진, 선박 충돌 조건을 반영했다. 감시 제어 데이터 수집 시스템(SCADA)과 지능형 교통 시스템(ITS)을 적용해 터널사고 발생에도 대비했다.


 두 개의 거가대교에도 다양한 특수공법들을 적용했다. 외해에서의 시공 환경을 고려해 구조물을 미리 제작한 뒤 해상장비로 운반하는 ‘프리케이스 공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다. 해상과 고공에서 작업하는 위험성을 감안해 만든 ‘자동 상승 거푸집’, 교각과 바닥을 하나로 만드는 ‘수중 그라우팅’, 상판을 케이블에 매달려 있게 하는 ‘플로팅데크 시스템’ 등 여러 공법을 적용했다.


 미래의 선박 통행 시나리오를 분석해 선박 충돌 시에도 교량이 안전하도록 설계했다. 순간 최대풍속 78m/s에도 견딜 수 있다. 106m 높이에서 돌풍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는 설비도 갖췄다. 지진으로 진동이 발생하면 교량 자체에서 진동을 감소시키는 첨단 기술도 적용했다. 대우건설 해외인프라본부 성현주 전무는 “외해 지역에 두 개의 대교와 세계에서 가장 긴 침매터널을 우리나라 기술로 건설했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거가대로에 사용한 첨단 기술을 해외에도 다양하게 적용해 국익을 선도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침매터널=육상에서 제작한 여러?개의 구조물을 물속에서 연결시켜?만든 터널로 해저터널 공사에 주로?활용된다.


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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