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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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권력에 저항하면서도 북한에 대해선 강경책을 주장해온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가 27일 오전 4시 별세했다. 94세. 전주고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 전 총재는 3대 총선(1954년)에서 무소속(전주)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활동하다 61년엔 군사정권의 정치규제로 해외 망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의원 경력은 7선(3ㆍ4ㆍ5ㆍ8ㆍ9ㆍ10ㆍ12대)이다.

이 전 총재의 신념은 ‘반독재+반공’으로 요약된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독재 권력에 대항하면서도 반공 이념은 일관되게 유지했다. 야당 정치인이면서도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가 국가안보를 위해선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까지 생각한 인물이다.

70년 신민당 대선 경선에서는 김영삼(YS)ㆍ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경쟁하고, 유신 체제에 대한 투쟁 방식을 두고 계파를 형성해 YS와 당내에서 대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72년 유신 선포 이후 YS가 주도하는 강경 투쟁노선이 당권을 장악할 때, 이 전 총재는 중도통합론을 주장하며 온건파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독재권력과 타협할 수 없다’는 분위기에 묻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고(故)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는 2004년 작고 이전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이철승씨와 야당을 함께하면서 자주 부딪쳤고 그의 중도통합론에 반대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사람만큼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도 드물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 전 총재의 소신은 정계 은퇴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2007년 3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의 회장을 맡은 85세에도 변함없는 국가관과 대북관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취임 기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자랑스러운 건국이념과 정통성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려왔다”며 “확고한 국가관과 대북관을 가진 (대선) 후보가 나오면 앞장서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 국회부의장(73년), 제 30차 UN총회 한국 대표(75년)도 맡았다. 가족은 부인과 함께 1남1녀를 뒀다. 이양희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가 고인의 딸이다.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2011년) 어린이 권익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다.

빈소는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일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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