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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두증 아이의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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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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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외과학

지카 바이러스 충격이 일파만파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에볼라·신종플루·메르스 사태의 악몽이 엊그제인데 또 다른 병균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과거 공포의 대상이던 천연두·콜레라·장티푸스 등은 의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염병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턴 시절 무뇌아 신생아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메르스 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최선 다해야

 지카 바이러스는 태반을 통해 태아도 감염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아는 뇌의 발육 부진이 초래되어 소두증 발병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뇌 발달 장애로 인한 소두증 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매우 심각하다. 정도가 심하면 어려서 사망하기도 한다.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후 인턴 시절이니 꽤 오래전이다. 병원의 인턴은 전공의가 되기 전 여러 과에서 의학수기를 익히는 병아리 의사다. 5월에 산부인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나른한 봄날 오후에 만삭의 임신부가 출산을 위해 입원했다. 검사상 특이소견은 없었지만 웬일인지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복부 X선 사진을 찍었다. 태아의 머리와 산모의 골반 크기를 알기 위해서다. 지금은 보편화된 초음파 검사가 없던 시절이다. 산도가 태아의 머리보다 작으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

 필름을 보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찔한 결과에 입이 벌어졌다. 태아의 골격은 있었지만 두개골이 보이지 않았다. 태아는 무뇌증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뇌가 발달되지 않았고 따라서 두개골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사산하든지 살아서 태어나도 금방 사망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개골이 없으니 자궁경부를 밀어주지 못해 진행이 안 된 것이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소상히 설명했다.

 분만 유도제를 투여하면서 어렵게 출산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무뇌증이었다. 아기는 살아 있었지만 움직임이 아주 미약했다. 충격을 피하기 위해 산모에게는 사산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사산한 아기는 부검 때문에 병리과로 보냈다고 둘러댔다. 가족이 산모에게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크게 실망한 산모는 서둘러 퇴원했다. 지금처럼 정기적인 산전검사를 받는 시대에는 벌어지지 않을 상황이었다.

 어쨌든 모든 것이 해결되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태가 아주 위중했지만 살아 있는 아기 때문이었다. 부검을 하기로 했으니 병리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을 병리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히 신생아는 신생아실로 가야 한다. 그러나 신생아실의 의료진과 아이 가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받지 않으니 산부인과에서 돌볼 수밖에 없었다. 뇌가 없는 중증 장애아는 들릴 듯 말 듯 울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봄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결국 아기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계획했던 대로 병리과로 보내졌고 절차상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초보의사의 충격은 컸다. 지금도 힘없이 흐느끼던 무뇌증 아이의 특징적인 얼굴이 눈에 밟힌다. 약 40년간의 의사 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이때만큼 황망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뇌증은 뇌가 거의 없으나 소두증은 뇌의 일부에 결손이 있는 경우다. 따라서 무뇌증은 소두증의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뇌증은 지카 바이러스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남미에서 지카 바이러스로 인한 소두증 아이가 많이 태어났다. 경험했던 무뇌증과 많이 닮은 TV 화면 속 소두증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박멸되었다고 여겼던 전염병이나 지카 바이러스 같이 위협적이지 않았던 감염병들이 새롭게 문제가 되고 있다. 식자들은 기후변화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엘니뇨 현상으로 기온이 올라 모기가 창궐하기 때문이란다. 지카 바이러스가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카 바이러스 사태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우리 보건당국 또한 서둘러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지카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된다면 특히 우리들의 어린 생명에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경계태세를 늦추지 말고 메르스 사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 바란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외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