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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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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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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삼일절이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 만세….” 이 노래를 기억해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30~40년 전이었다면 오늘 골목골목은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하는 노래로 시끄러웠을 것이다. 고무줄놀이에 잘 맞았던지 ‘유관순 노래’는 삼일절이 아닐 때도 많이 불리었다. 아이들은 또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나오리다” 하는 이승만 대통령 찬가도 열심히 불렀다. 당시에 골목은 노래의 마당이었다.

골목의 놀이와 광장에서 함께 부르던 노래 사라진 시대
파편화된 개인은 노래방 마이크로 각자 18번을 부른다

다른 국경일 노래도 있었지만 ‘삼일절 노래’가 더욱 애창되었는데 특히 시위 때 그랬다. 거리에 차가 별로 없어서 당시의 시위대는 무난히 시내까지 진출하곤 했다. 그런 현장에서 시민들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이 ‘삼일절 노래’였다. 당시에는 부를 만한 시위용 노래가 따로 없었던 데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하는 마지막 부분의 뭉클함 때문에 시위대가 선호했으리라 짐작한다.

70년대에는 ‘우리 승리하리라’ 같은 번역노래도 거리에서 불리더니 ‘아침 이슬’이 나온 후에는 이 노래가 70~80년대를 넘어 오랫동안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도 퍽 유장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힘이 있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80년대에는 거리에 노래가 넘쳐났다. 나는 시위가 잦았던 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함성과 노래를 들으며 지냈다. 최루가스에 눈물을 흘리며 돌멩이가 어지럽게 흩어진 교정으로 출근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학생들이 팔을 뒤로 꺾인 채 붙들려 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냥 지나쳐 가는 날들이었다.

거대담론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 평화로울 때에는 할 필요가 없던 질문을 붙들고 씨름들을 했다. 노래도 그 영향을 받았다. 우리, 통일, 민족, 자유, 단결 같은 단어들이 노랫말에 단골로 등장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하는 노래는 이 시대에 딱 맞는 정서를 노래했고 곧 80년대와 그 이후의 ‘현장’에서 빠짐없이 불리는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말미는 이렇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비장하며 선동적이다.

당시 노래는 나름 원활한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노래동아리들이 그 구심점이고 엠티나 각종 행사가 그 경로였다. 동아리방의 선배들은 통기타 같은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노래를 지도할 줄 알았다. 방송·음악회장·음반가게 같은 데에서는 만날 수 없는 노래들이 이 유통경로를 통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즈음 노래 분야의 스타들이 나타난 것도 이 유통 덕분이었다.

90년대 후반, 정치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시민들이 거대담론에 염증이 난 때문인지 함께 부르는 노래는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노래방이 번영했다. 한잔 걸친 사람들이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 잡고 각자의 18번을 부르는 문화가 되었다. 수십만 명을 광장에 모았던 월드컵 경기는 “대~한·민·국”이라는 탁월한 구호를 남겼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내진 못했다. 그 이후 여럿이 부르는 노래는 야구장에서 부르는 ‘남행열차’나 ‘돌아와요 부산항에’ 정도랄까?

광장에서는 요즘도 적지않은 집회가 열린다. 군데군데 수십 명, 수백 명이 모여 구호도 외치고 행사도 벌인다. 악덕기업을 비난하기도 하고 북한을 규탄하기도, 자기네 고장을 선전하기도 한다. 화형식도 하고 노숙도 하고 축제도 한다. 그러나 같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녹음기로 낡은 투쟁가요를 틀든가 가수가 마이크를 붙들고 노래를 한다.

골목의 놀이도 없어지고 거리의 함성도 끊어진 시대, 공동체는 조각 나 파편화되고 고립된 개인만 남은 시대, 같이 노래할 줄도 모르고 부를 노래도 없어진 시대… 외롭다. 모두가 외로운 세월이다. 그러니 홀로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저렇듯 격렬하고, 마이크 소리는 턱없이 큰 것이리라.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