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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나눔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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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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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두 사람이 가장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진 사람들의 독점이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나누는 권한을 가졌다면 선택은 타인에게 맡겨야

더 힘을 가지고 있는 이가 양심껏 나누고 양심껏 선택하는 방법? 그러한 양심적인 권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신뢰받는 절대적인 지혜자가 배분하는 방법?

안타깝게도 그런 신뢰감도 현인도 찾기 어려워진 시대다.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두 사람에게 맡기는 방법이다.

한 사람은 나누고, 다른 사람은 선택하는 단순한 방법. 단 그 권한을 둘로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나누는 사람은 상대방이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본인이 손해 보지 않도록 가능한 한 똑같이 나누고, 선택하는 사람은 그중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다. 나누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가 욕심을 가지고 어느 한쪽을 크게 나누면 상대방이 큰 쪽을 택함으로써 오히려 본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의 균형에 의해 양쪽이 동의하며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너무나 간단한 규칙을 10여 년 전 먼 여행길에서 만난 꼬마들에게서 배우고 경탄한 적이 있었다. 힘을 가진 이가 나누고 그 사람이 스스로 먼저 고르는 문화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내게 일종의 문화충격이자 놀라운 지혜로 다가왔었다. 케이크를 가능한 한 많이 먹고 싶은 두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 케이크 칼을 쥔 아이는 자기가 더 큰 조각을 먹으려는 심산으로 어느 한쪽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자른다면 어김없이 상대방이 더 큰 조각을 가질 것을 알고 있으므로 최선을 다해 정확히 반으로 자르려 한다. 그리고 선택은 상대방에게 넘어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케이크 조각을 고른다. 나눔과 선택의 균형! 이 사소해 보이는 규칙은, 흔히 “자르고 선택하기(Cut & Choose, Divide & Choose)” 혹은 “나는 자르니 너는 골라라(I cut, You choose)”라고 불리는 공평한 나눔의 지혜다.

 우리 일상을 돌아보면 자르고 선택하는 것을 한쪽이 독차지하는 불균형이 흔히 발견된다. 마치 힘이 더 센 아이가 케이크를 자르고 큰 조각을 스스로 선택하는 욕심을 부리는 모양처럼 더 큰 권력을 가진 이들은 직접 만든 규칙에 의해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 한다.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이 만드는 유리한 규칙과 독점이 점점 더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떤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고 그에 대한 이익을 본인들이 선택하기도 한다. 권력의 분립과 존중을 통해 균형을 이루어야 할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어떤 권력은 스스로 만든 규칙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 소위 갑을 문제에도 선택의 권한은 실종돼 있다. 갑이 제시하는 조건을 을이 받아들여 성사되는 이상적인 균형 관계 대신 갑이 불공정하게 만든 조건을 을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관계로 우리 사회는 협력과 공생의 정신을 잃어 가고 있다.

 물론 ‘자르고 선택하기’의 원칙을 현실에 쉽게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다. 만약 케이크 위에 딸기가 놓여 있고, 서로 딸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나눠야 할까? 단순한 동질의 케이크가 아니라 여러 복잡한 가치가 섞여 있는 것이라면? 절대 나눌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현재의 순간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고려해야 할 복잡한 선택이라면? 등등의 많은 딜레마는 단순한 적용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복잡성을 핑계로 균형의 노력을 외면하기에는 우리 현실은 기본적인 균형조차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다.

 우리 사회에 좀 더 희망을 가져본다면 자르는 권한을 가진 이에게 역지사지의 태도와 공감의 마음을 기대해 보고 싶다. 선택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려 깊음과 상대방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의 차원. 그러나 이 욕망의 시대에 그러한 인품까지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면 기본적인 규칙만이라도 사회적 안전장치로 필요하다. 나누는 권한을 가졌다면 선택은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아이들조차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