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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영화 ‘마션’에서 배워야 할 장수시대 노후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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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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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영화 ‘마션’은 화성 탐사 중 사고로 동료들은 탈출하고 화성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구조되는 날까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급작스럽게 장수시대를 맞게 되는 우리들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희망을 잃지 않고, 꼼꼼히 계산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일기를 쓰고, 외부와 교신을 시도하며, 식량을 절약하는 행동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핵심적인 것은 먹는 문제이다.

식량 아껴 먹으며 버티기 아닌
화성서 감자 키우듯 사고전환을
주식 투자위험 1년 18%, 30년 2%
긴 노후 대비, 재테크도 길게 봐야

 이 영화에서 홀로 남은 주인공이 가장 먼저 부닥친 문제는 구조대가 올 때까지의 날 수에 비해 남아 있는 식량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이다. 화성 탐사기간에 적합한 정도로 준비를 해두었는데 화성에 있어야 할 기간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명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진 지금 환경에서도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1년에 2000만원의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20년을 더 살게 되면 4억원이 더 필요하다.

 급작스런 장수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마션의 주인공과 같은 생존 게임에 놓여 있다. 마션에서처럼 남아 있는 식량인 감자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잘 활용해서 감자를 늘려야 한다. 영화에서는 감자를 적게 먹고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발상을 한다. 바로 화성에 감자를 심어서 재배하는 방법이다. 장수시대 노후 자산관리 역시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명이 길어지면 필요한 노후자금이 증가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지만, 노후자금을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시각에서 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예전에는 은퇴 후 10년 정도 있으면 아프고 그 후 몇 년 아프다가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유동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은퇴 후에 30년 이상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으면 장기투자의 여력이 커지게 된다. 자산을 장기로 운용하면 단기로 운용하는 것에 비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장기투자는 유동성 프리미엄을 준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 부동산펀드, 사모주식펀드(PEF)는 원할 때 바로 돈을 찾지 못하고 일정기간 묶여 있지만 여기에 상응하는 수익률을 더 얹어 준다. 그래서 자금을 장기로 운용하는 생명보험사들은 초장기 프로젝트에 투자를 한다. 그뿐 아니다. 위험자산을 보유해도 장기적으로는 그 위험이 단기로 운용할 때 비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는 주식·장기채권·단기채권의 위험을 보유기간별로 측정했다. 주식은 1년 보유하면 표준편차로 측정한 위험이 18%인데, 10년 보유하면 5%로 줄어들고 30년을 보유하면 2%를 하회하게 된다. 장기채권은 1년 보유하면 위험이 9%인데, 10년 보유하면 4%로 줄어들고 30년을 보유하면 2%를 약간 웃돈다. 위험이 큰 자산일수록 보유기간을 늘리면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크다 보니 노후에 장기투자 하자는 얘기가 잘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긴 노후에 대한 대비를 찬찬히 해가는 게 좋다. 요즘처럼 주가가 하락하면 배당수익률은 올라간다. 배당수익률이 3~4% 나오는 주식을 지금 사두면 주가가 어떻게 변하든지, 배당성향만 크게 변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 배당수익률을 얻는다. 중간에 주가가 오르면 팔아서 이득을 취해도 된다. 배당 목적이 아니더라도 좋은 기업을 싸게 사둔다는 생각을 해도 된다.

 팔순 중반을 넘겼는데 연금으로 생활을 하며 자녀가 다니는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 생전에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면 자식에게 주면 될 게 아니냐고 말한다. 장수시대는 자산관리도 길게 봐야 한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후 자산관리는 장기투자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장수시대에는 위험자산의 비중을 ‘100-나이’로 생각하는 과거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영화 마션에서 보듯 구조대가 올 때까지 감자를 적게 먹고 버티는 게 아니라 감자를 심어 재생산한 것처럼, 노후 자산관리도 장기투자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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