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 통·번역 시장 잡아라…무료 앱 무한경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기사 이미지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 플리토에는 매일 10만 건 정도의 번역 요청이 올라와 번역이 이루어진다.

지난해 초 글로벌 번역앱 서비스를 하는 한국 스타트업 플리토에 e메일 한통이 왔다. “플리토 서비스 덕분에 20여 년 넘게 헤어졌던 아내와 장모님이 오래 전의 추억을 나눌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삼성·구글·MS에 스타트업들도 가세
플리토, 세계 500만명 사용자가 번역
정확성 좋아지고 음성 서비스도

아내는 어렸을 때 미국에 입양됐고,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어머니를 찾고 싶어했다. 두 모녀는 한국에서 눈물의 재회를 했지만, 언어가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플리토 앱은 두 사람의 소통을 도와줬다.

아내가 “몸은 괜찮아요”라고 영어를 쓰면 한국어로 번역이 됐고, 그 문장을 어머니에게 보여줬다. 어머니는 “잘 지냈니”라고 썼고, 영어로 번역된 내용을 딸에게 보여주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남편이 고맙다는 메일을 보낸 이유다.

플리토 앱은 사용자가 번역 요청을 하면 전 세계 500만 사용자가 번역 해주는 집단지성 번역 앱 플랫폼이다.

 글로벌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통·번역 앱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연구기관 윈터그린 리서치(WinterGreen Research)에 따르면 2012년 6억 달러이던 세계 기계번역 시장 규모는 2019년 69억 달러(약 8조5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구글·MS·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번역 앱 서비스를 내놓았거나 준비 중이다.

최근 ‘꽃보다 청춘’에 출연 중인 배우 조정석이 구글 번역 앱을 이용해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내장 번역 앱인 ‘S 번역’을 서비스하고 있다. 번역 기술도 진화 중이다.

텍스트 번역에 머물렀던 기술은 음성, 이미지 속의 문자를 추출해 번역하는 기술로 발전했다. 정확성이 좋아지면서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스타트업 플리토는 ‘휴먼 번역’(사람이 직접 번역해주는 시스템)을 내세우고 있다. 플리토를 제외하면 한국에 나온 서비스는 기계 번역이 대부분이다. 타임스페이스시스템의 ‘글로벌 통역기’, 헬로챗주식회사의 ‘헬로챗’ 앱도 한국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통·번역 앱이다.

시스트란 인터내셔널도 통·번역 앱을 서비스 중이다. 플리토 이정수 대표는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 등의 대기업도 자사 내에 번역 개발팀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번역 앱 시장의 확정성은 무궁무진하다. 시스트란 인터내셔널 최창남 대표는 “번역 결과물은 이제 콘텐트다. 이 콘텐트는 IoT 시대에는 음성 인식에 사용될 수도 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검색에 이용된다”고 설명했다.

플리토의 행보는 통·번역 앱의 미래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중소상인과 손을 잡고 음식점 메뉴를 18개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시작 2주 만에 80여 곳의 식당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해외 관광객을 받고 싶은 한국인들은 플리토를 이용해 다양한 언어로 숙소를 소개하기도 한다.

플리토로 번역한 문장들은 네이버 전자사전에 ‘예문’으로도 제공되고 있다. “번역 콘텐트를 전자사전 업체에 팔겠다고 할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며 이 대표는 웃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