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 480일째, 아쉬울 게 없는 현역들의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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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480일. 2014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편차 기준을 2대 1로 하라는 결정을 내린 지 21일로 꼭 480일째다.

총선 D-51, 왜 선거구 처리 못하나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은 선거일 1년 전까지 하도록 돼 있다. 다만 부칙에 20대 총선에 한해 2015년 11월 13일(선거일 5개월 전)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5개월 전은커녕 선거일이 불과 52일 남은 21일까지도 여야는 선거구를 확정하지 못했다. 수차례 여야 협상이 있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다. 선거에 살고, 선거에 죽는 정치권이 선거의 기본 룰인 선거구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사태를 악화시킨 당장의 주범은 민생법안과 선거법을 연계한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 “민생법안 처리 없이 선거구 획정은 없다”고 밝혔다. 임기 4년 차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 선거법을 처리한 뒤 야당이 민생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때문이었다.

지금도 박 대통령의 뜻은 변함이 없다. 박 대통령은 북핵 위기 등으로 마련된 지난 16일 국회 특별연설에서도 연설의 5분의 1을 민생법안 처리 요청에 할애했다.

김무성 당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의 배웅을 받는 자리에서도 “민생법안 처리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한다.

‘신박’으로 불리는 원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에게 “정치권에선 선거법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민생법안 처리를 더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국민들 보기 부끄러워서라도 민생법안을 같이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도 민생법안 처리가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무한정 늦출 수 없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김종인 대표와 만난 뒤 기자들에게 “29일 선거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안심번호 경선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선거법 처리가 지지부진한 데는 국회의장의 리더십도 원인으로 꼽힌다.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 시한인 지난해 11월 13일 이후 몇 차례 시한을 제시하며 “여야가 합의 못하면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이후 말을 뒷받침하는 행동은 없다. 여야 대표와 원내지도부 간 협상을 중재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야 원내지도부들이 문제다. 원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주장을 당에 전달하고 시행하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만 당의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데는 약하다. 더민주 역시 선거법 우선 처리를 주장하면서도 막상 쟁점 법안 처리에선 전혀 양보를 하지 않고 있다.

 이화여대 유성진(정치학) 교수는 “현재 선거구 협상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함께 당리당략 주장만 되풀이하는 총체적 난국”이라며 “각 당 지도부는 실익 없는 회의만 되풀이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정치권이 선거법 처리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건 신인들과 달리 현역 의원들의 경우 선거법이 늦게 처리될수록 이득이기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이가영·안효성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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