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70일 수사 마친 송두환 특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70일간의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마친 송두환(宋斗煥 ·54)특별검사가 처음으로 본지 취재팀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지난달 25일 수사 발표 후 꼭 일주일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법무법인 `한결`의 대표변호사 사무실에서다. 취재팀의 끈질긴 요청에 그가 "잠깐 차나 마시러 오라"고 해서 이뤄진 인터뷰였다. 세시간의 인터뷰 동안 그는 내내 민감한 대목에서 말을 아끼려 노력했다. "기소한 피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4일부터 시작되므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얘기는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성격과 수사 과정, 사법처리 기준 등은 밝힐 수 있는 범위에서는 자세히 설명했다. 이따금씩 그간의 소회도 곁들였다.

-특검팀은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현대에서 1백50억원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박씨 측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관련 진술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수사가 더 진행돼 모든 걸 다 뒤집을 만한 증거가 나온다면 몰라도 朴씨를 구속할 시점에서는 영장을 청구할 정도의 소명은 충분하다고 봤지요."

-그런데도 수뢰 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일반 검사라면 기소를 한 뒤 보강 수사를 할 수 있지만 특검팀은 수사기간이 끝나면 사실상 해체됩니다. 참고인 한두명을 조사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 사건처럼 상당수 전문인력이 장기간 쫓아다녀야 하는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요. 특히 1백50억원의 `세탁` 과정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치밀한 기법이 동원됐습니다. 관련자들의 진술만으로도 공소 유지는 가능하지만 법정 공방에 운명을 맡기기엔 너무 중대한 사건이고…. 보강 수사를 마치지 못한 채 朴씨를 기소할 경우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따라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정부가 북한 측에 1억달러 지급을 약속한 부분은 언제 알았나요.

"수사 중반쯤입니다.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지요. 공개될 경우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했습니다. 특히 전체 대북송금액인 5억달러를 경제협력의 대가로만 보던 분들은 무척 놀랄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 문제가 끝 무렵이 아닌 중반에 나타났기에 조사받으러 온 분들과도 충분히 의견교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

-1억달러 부분을 공개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던데요.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영원히 감춘다는 게 일단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요. 수사 자료를 폐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법원에 수사기록이 넘어가게 되면 재판 과정에서 공개될 테니…."

-발표문에 1억달러를 `정책적 지원금`이라고 밝혔는데.

"대북송금을 고도의 정책적 결정이라고 본 거지요. `대가성`이라는 용어를 쓸지를 두고 내부 토론을 했는데 결론이 명쾌하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과관계가 있으면 그게 대가 아니냐는 일상적인 의미와, 정상회담을 사고 팔았다는 부정적 의미가 함께 들어 있지요. 우리가 대가라고 쓰거나, 반대로 대가가 아니라고 밝힐 경우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대북송금과 정상회담 사이에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 `정책적 차원의 대북 지원금이었다`는 표현을 쓴 거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았는데요.

"金전대통령이 (대북송금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는 우리도 명백하게 특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후 보고라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행위에 개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수사 자체의 완결성, 즉 꼭 처벌을 전제하지 않고라도 수사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상징적 의미에서라면 필요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거고, 이로 인해 상처받을 많은 국민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수사 도중 통치행위론에 대해 외부 자문을 받았는데요.

"우리 생각과는 관계 없이 이 사건은 통치행위에 속해 수사 자체를 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더 수긍가는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수사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없었나요.

"(대북 송금 사실이) 수사를 통해 벗겨지는 형식이 아니고 당사자들이 사후에라도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용기를 가졌다면 좋았을 텐데…. 더 바람직하기로는 정상회담을 추진할 당시에 국민 앞에 공개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잠시 어려울 수는 있더라도 결국 국민들의 동의를 받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수사기간 연장 요구가 거부당했습니다.

"만약 연장이 됐더라면 더 다듬고 숙고하고 좀더 설득력 있게 수사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송금 지연과 정상회담 연기가 무관하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자칼의 날』이라는 소설에 보면 경호를 위해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행선지나 일정을 계속 바꾸는 대목이 나오지요. 경호문제로 정상회담 일정이 변경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판단하기 위해 송금 일자뿐 아니라 북한에서 보내온 회담 연기 통지문 내용도 확인했습니다."

-박지원·이근영·이기호씨는 구속하고 그외 5명을 불구속한 기준은 뭐였습니까.

"곧 재판이 시작되므로 개별 대상자에 대한 언급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다만 죄의 경중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상 강제수사 요건(증거 및 도주 인멸의 우려 등)에 따라 구속 여부를 결정했지요."

-수사 기간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수사 전부터 사건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사실관계를 철저히 규명하라고 요구한 반면 다른 쪽에서는 남북관계 장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6·15 공동선언 정신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었지요. 수사기간 내내 양측이 대립해 무척 괴로웠지요."

-언론과의 관계는.

"기자들이 정말 수고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엔 할 말이 있습니다. `金전대통령의 출국금지가 필요하면 할거냐`고 물어 `필요하면 하는 거고 필요 없으면 안 하는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더니 다음날 1면에 `출국금지 대상`이라는 식의 제목을 달아 보도하더군요. 상당수 언론이 `1억달러는 정상회담 대가`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반면 중앙일보는 `사실상 정상회담 대가성`이라고 제목을 달아 인상이 깊었습니다."

`宋특검팀`은 `일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인터넷에 카페도 꾸리고 정기모임도 가질 계획이다. 일사회라는 이름은 `1억원+4억원`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송금액 5억달러 중 1억달러를 정부가 지급 약속했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특검팀 구성원들에게 가장 큰 성과이자 고민이었음을 의미한다.

宋특검은 그러나 "일사회를 그런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한번 죽지(一死) 두번 죽겠느냐는 각오로 수사에 임했다는 뜻 등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평가는 역사가 하겠지만 특검팀 모두가 하나가 돼 열심히 일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자리를 일어섰다.

<만난 사람>
사회부 = 이규연 차장, 강주안·전진배 기자
사진부 = 김춘식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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