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왕세손도 브렉시트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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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에서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못지 않게 호감을 사는 인물이 윌리엄 왕세손(사진)이다. 엘리자베스 2세 사후 부친인 찰스 왕세자 대신 윌리엄 왕세손으로 바로 왕위가 계승됐으면 좋겠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그가 16일 젊은 외교관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영국은 지난 수세기 동안 대외 지향적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여 늘 지평선 너머를 탐험해왔다"며 "어디를 가든 동맹과 협력하는 대상을 찾아온 자부심 넘치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격동하는 세계에선 다른 나라들과 공동 행위를 통해 뭉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라며 "안보와 번영의 기반이며 여러분들 일의 중심"이란 당부를 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이날 유럽연합(EU)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중동 등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영국 언론에선 그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 대해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윌리엄 왕세손이 EU 잔류를 지지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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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도 왕실의 공개적인 발언은 없었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가 한 시민에게 "신중하게 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여왕이 독립에 반대한다고 추정됐을 뿐이다.

EU회의론자는 연설문 초안을 제공한 영국 외교부를 비난하고 있다. 왕세손에게 잘못된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해 베를린에서 "유럽의 분열은 위험하다"고 했을 때도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젤 파라지 당수는 여왕 주변의 인사들을 비난했었다.

영국 정가가 윌리엄 왕세손 발언에 주목하는 건 그의 비중도 있지만 시점의 미묘함 때문이기도 하다. 불과 48시간 여 후인 18일부터 양일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나머지 EU 27개국 정상들과 마지막 담판을 하기 때문이다. EU출신 이주민에 대한 복지 혜택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이달 초 합의초안을 추인할지를 두고서다. 만일 합의안이 나온다면 19일 영국 내각 회의에서 국민투표 일정이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6월 말로 여겨지고 있다.

런던 주재 한국 외교관은 이와 관련, "유럽 외교관들은 브렉시트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탈퇴 의견이 9%포인트 앞서는 여론조사(유고브)도 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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